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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30, 2026

베네치아의 상징이 된 ‘성 마르코’와 ‘날개 달린 사자’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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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갈리시아주에 있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약칭 산티아고) 대성당 파사드 위에 성 야고보 조각상이 순례객 형상으로 세워져 있다. 스페인어로 산티아고(Santiago)는 산토(Santo, 성인)와 이아고(Iago, 야고보)의 합성어로 성 야고보를 가리킨다. 갈릴래아 출신 야고보는 예수 사후에 예루살렘에서 포교 활동 중 순교했는데, 그의 추종자들이 주검을 빼돌려 야고보가 처음 포교하던 에스파냐 서부로 옮겨오면서 산티아고가 형성되고 산티아고 순례의 기원이 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페인 갈리시아주에 있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약칭 산티아고) 대성당 파사드 위에 성 야고보 조각상이 순례객 형상으로 세워져 있다. 스페인어로 산티아고(Santiago)는 산토(Santo, 성인)와 이아고(Iago, 야고보)의 합성어로 성 야고보를 가리킨다. 갈릴래아 출신 야고보는 예수 사후에 예루살렘에서 포교 활동 중 순교했는데, 그의 추종자들이 주검을 빼돌려 야고보가 처음 포교하던 에스파냐 서부로 옮겨오면서 산티아고가 형성되고 산티아고 순례의 기원이 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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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유럽의 중세를 ‘암흑기(Dark Ages)’에 빗댄다. 익숙한 통념이지만, 단편적인 평가이거나 편견에 가깝다. 이러한 시각은 14~15세기 르네상스를 이끈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에서 비롯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학과 예술, 철학적 성취가 476년 서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묻혔다가 당대에 재발견되기까지의 시간을 어두운 침체기로 묘사하고, 자신들의 시대와 선을 그었다. 전쟁과 기근, 흑사병 창궐, 종교적 도그마의 지배 등으로 중세를 ‘문명과 인간 정신이 쇠퇴 시기’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 1000년에 걸친 긴 세월이 내내 어둠에 덮여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유럽의 중세에도 고대 유산이 보존되고 재해석됐으며, 새로운 제도와 지식, 기술이 발전했다. 프랑스 중세사학자 장 베르동의 말마따나 “중세 1000년은 단일한 성격의 시기가 아니다. 고대 문화가 5세기에 돌연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근대 국가들이 16세기에 갑자기 태어난 것도 아니다.” (‘중세는 살아있다’, 도서출판 길, 2008)

유럽의 도시에서 중세사 읽기 l 한국서양중세사학회 기획, 성백용 외 15인 지음, 푸른역사, 2만5000원
유럽의 도시에서 중세사 읽기 l 한국서양중세사학회 기획, 성백용 외 15인 지음, 푸른역사, 2만5000원

유럽의 중세를 재조명한 국내외 연구자들의 책도 제법 출간되고 있다. 한국서양중세사학회가 기획하고 16명의 연구자가 필진으로 참여한 신간 ‘유럽의 도시에서 중세사 읽기’도 그중 하나다. 성백용 한남대 교수는 유럽의 중세를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명적 정체성이 형성된 시대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여러 민족과 국가들이 제각기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간 시대”(서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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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선택한 방법은 근대 국가가 성립되기 한참 전부터 발달해 온 유럽의 여러 도시와 그곳에 남은 역사적 흔적을 통해 중세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서양 중세가 포괄하는 광대한 시공간과 집단기억이 응축된 상징적 장소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흥미로운 장소들, 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기억의 층위들이 쌓여 있는” 곳들을 선정했다. 저자들은 역사 기행 특유의 재미와 현장감을 유지하면서 학문적 긴장감도 놓치지 않았다.

책의 또 다른 미덕은 도시와 장소의 다양성이다. 파리·랭스·칼레·아비뇽·디종(이상 프랑스), 아헨·나움부르크·보름스(독일), 베네치아·로마(이탈리아), 헤이스팅스·캔터베리·런던·스테이션아일랜드(영국), 산티아고(스페인), 쥬네브(스위스 제네바)·콘스탄티노폴리스(튀르키예 이스탄불) 등 오늘날 기준으로 7개국 17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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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날개 달린 사자상. 게티이미지뱅크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날개 달린 사자상. 게티이미지뱅크

성당과 궁전, 광장과 기념물에는 왕권과 교회의 권위, 상업의 발달과 도시민의 삶, 전쟁의 기억과 종교적 신념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익숙한 관광 명소도 중세사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드러낸다.

베네치아는 중세 지중해 상권을 장악한 공화국이었다. 수호성인은 산마르코(성 마르코), 수호상징은 날개 달린 사자다. 그 계기가 ‘성스러운 도둑질’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흥미롭 다. 9세기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슬람제국(아바스 칼리프 왕조)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안치돼 있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몰래 빼내 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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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사자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께 페르시아와 이집트 문명권의 상상의 동물 그리핀이다. 마르코 복음에도 예수가 사막에서 유혹을 받는 대목에 사자가 언급된다. 성 마르코와 사자가 짝을 이루게 된 연유다. 베네치아에서 사자가 공식 상징물이 된 것은 13세기 초엽이다. 영토 팽창에 나선 베네치아가 솟구쳐 오르는 사자의 위풍당당함을 대외적 이미지로 활용한 것. 성 유물을 훔쳐 온 사건이 종교적 권위와 도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된 셈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랭스대성당이 독일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모습. 왕국 시절 새로 즉위하는 국왕의 축성식이 열렸던 문화유산에 대한 독일군의 공격은 프랑스인들 사이에 공분을 자아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랭스대성당이 독일군의 포격으로 파괴된 모습. 왕국 시절 새로 즉위하는 국왕의 축성식이 열렸던 문화유산에 대한 독일군의 공격은 프랑스인들 사이에 공분을 자아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북부 도시 랭스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유명하다. 400년께 노트르담(우리의 성모)에 봉헌된 교회로, 1210년 화재로 소실된 직후 훨씬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프랑스인들에게 랭스 대성당은 수백년을 이어온 성대한 의례로 기억된다. 새로 즉위하는 프랑스 국왕의 축성식이다. 축성식은 도유(기름 부음)와 대관으로 이뤄지는데, 새 국왕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공식 인정받는 통과의례일 뿐 아니라 “프랑스 민족의식의 형성에 하나의 주춧돌”이 됐다. 랭스에서의 축성이 특별한 이유는 프랑크 왕국의 시조이자 프랑스 최초의 기독교도 왕 클로비스가 바로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치 와 종교만 도시의 역사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중세 런던은 토착민과 이주민이 만나고 교역한 도시로 융성했다. 서기 43년 로마군은 켈트족이 살던 브리튼 섬을 점령하고 템스강 북안에 ‘론디니움’이라는 마을을 세웠다. 2~3세기에는 마을을 성벽으로 둘러쌌는데, 오늘날 대도시 런던의 배꼽이자 금융가가 밀집한 ‘시티 오브 런던’의 기원이다.

5세기에 로마인들이 물러간 뒤에는 앵글로색슨족이 유럽 본토에서 건너와 켈트족을 북부로 몰아내고 정착했다. 브리튼 섬의 동남부는 그렇게 ‘잉글랜드’가 됐다. 런던은 템스강이라는 지리적 강점 덕분에 물류와 상업의 거점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외국인들의 활동이 크게 기여했다. 중세 런던은 노르망디 유대인, 이탈리아 상인, 한자동맹 상인들과 유럽 각지에서 온 수공업자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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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안도시 헤이스팅스의 배틀 수도원 앞 들판에서는 1066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 전쟁을 재연하는 행사가 매년 벌어진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 해안도시 헤이스팅스의 배틀 수도원 앞 들판에서는 1066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 전쟁을 재연하는 행사가 매년 벌어진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일반인에겐 낯선 런던 인근의 해안 도시 헤이스팅스도 중세 영국사의 분기점이 된 유적지다. 1066년, 오늘날 프랑스 북서부 지역의 노르망디 공국의 군대가 도버 해협을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했다. 앵글로색슨계 왕조는 노르만 왕조로 대체됐다. 그 첫 전투가 벌어진 곳이 헤이스팅스의 언덕(셀라크 힐)이다. 정복왕 윌리엄 1세는 승전을 기념하고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진 들판(배틀 필드)에 배틀 수도원을 세웠다.

독일과 폴란드 국경지대의 소도시 나움부르크는 ‘민족주의’라는 신화의 허구를 보여준다. 독일의 대표적인 고딕 성당 중 하나인 나움부르크 성당의 성가대석에는 1240년께 제작된 ‘우타(Uta) 입상이 있다. 성당 설립자 12명을 실제 크기로 형상화한 군상 중 하나다. 우타는 11세기 이 지역을 통치한 백작의 부인이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도 이 성당과 우타 입상은 존재감이 미미했다.

제1차 대전(1914~1918)에서 패배한 독일은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을 역사적 표상을 과거에서 찾으려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타는 중세 동부 변경 지역의 시련을 의연하게 견뎌 낸 독일 여성의 표상으로 재해석돼 집단기억으로 소환됐다. 그러나 입상의 주인공 우타가 살던 11세기는 독일 국가는커녕 ‘독일 민족’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대였다.

이 밖에도 책에 소개된 장소 하나하나마다 권력과 신앙, 교역과 이주, 전쟁과 정복의 기억들이 타임캡슐처럼 새겨져 있다. 오래된 도시를 걷는 일은 과거로의 여행인 동시에 현재를 이해하는 혜안을 준다. 이 책은 그 여행의 훌륭한 길라잡이다. 후대가 역사를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이유와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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