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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1, 2026

[김명희의 사회의학 클리닉]사회운동이라는 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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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말,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일터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라면서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가 곧바로 이어졌다. 노련한 후원회원의 ‘촉’에 따라 필시 재정난 이야기일 것이라 추측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33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 인권운동 단체이지만 살림은 항상 어려웠다. 물론 이곳만이 아니다. 정부 사업을 위탁받거나 정부 보조금, 기업 후원을 받지 않는 ‘사회운동’ 성격의 시민단체들은 대체로 사정이 비슷하다. 빠듯한 살림을 이어가다 몇년에 한 번씩 반드시 재정위기가 도래하고, 특별 후원 캠페인과 이벤트를 통해 위기를 겨우 넘기는 일이 반복된다. 필자가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노동건강연대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사정이 어려운가? 영리사업을 하지 않고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원의 후원에 의존하는데, 이들 단체는 활동 특성상 후원을 조직하기 매우 어렵다. 당장 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아도, 가난하거나 아픈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후원에는 그래도 손쉽게 지갑을 연다. 내가 낸 후원금이 수혜자들에게 직접 도움이 된다는 점이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후원에도 의구심은 따라붙는다. 후원금이 온전하게 수혜자를 위해서만 쓰이지 않고 단체 운영 경비에 쓰이는 것이 불만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수혜자에게 금전 지원을 하고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일을 하려면 사무실과 컴퓨터, 책상과 의자, 인터넷 설비, 활동 경비 등이 필요하다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수혜자에게 직접 지원을 하는 복지단체들도 이런 의구심에 시달리는데, 하물며 혜택 자체가 모호한 사회운동 단체는 후원 모집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인권 침해가 일어난 곳에 달려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활동, 매일매일 산업재해 현황을 모니터하고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기업을 규탄하고 정부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는 활동은 성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번화가에서 마주치는 국제구호단체들의 모금 활동처럼 말 몇마디와 함께 스티커 붙이는 짧은 시간만으로는 단체의 활동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이런 활동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수 없다.

활동가들도 자신이 근무하는 단체의 후원을 요청하는 것이 어쩐지 부담스럽다. 필자만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후원하는 단체에 함께 회원으로 활동하고 후원하자는 요청은 많이 했지만, 정작 내가 단체 상근자가 되었을 때는 후원해달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내 월급 마련하게 돈 달라는 것 같아 민망하고 멋쩍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은 한국 사회의 많은 것을 바꾸어냈다. 군사독재를 끝장낸 것도, 헌정을 파괴한 대통령 두 명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도 수많은 시민이 참여한 사회운동이었다.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개혁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게 만든 것도 노동·시민 연대에 토대를 둔 끈질긴 사회운동이었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평소 문제를 예리하게 포착해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시민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모아내는 사회운동 조직이 버티고 있다. 대다수 시민이 생업에 열중하는 동안 매의 눈으로 사회를 감시하고, 문제가 생기면 공동체에 위험을 알리며 함께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손잡는 법을 안내하는 역할. 그것이 바로 사회운동단체들이 해온 일이다.

활동가들은 경제적 보상이나 명망을 바라고 이 일을 하지 않는다.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열망과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은 오히려 그들을 자기 착취의 수렁으로 내몰고, 그래서 활동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는 한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회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은 그들의 열정과 활동을 통해 더 나은 사회라는 ‘간접적’ 혜택을 받는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밖에 없다.

내가 미워하는 정치인에게 화끈하게 욕을 해주는 유튜버에게 슈퍼챗을 쏘는 것이 당장의 정신건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운동단체라는 나무를 더 많이 심고 기꺼이 돌보아야 한다. 내란과 각종 범죄로 수감된 윤석열·김건희의 영치금이 21억원에 달한다는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인권지킴이인 인권운동사랑방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니, 민주시민으로서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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