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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16, 2026

‘말씀’에서 벗어나 나만의 언어를 찾아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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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딸의 백팔배 l 이정은 지음, 온다프레스(2026)
목사 딸의 백팔배 l 이정은 지음, 온다프레스(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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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의 배경에는 집, 목욕탕, 교회가 있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나는 십대까지 새벽/수요/일요 예배에 참여했다. “집회 그거 마귀 선동이니까 휘둘리지 마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열아홉 어느 오후까지. 그 뒤로도 교회 주위를 맴돌면서 쭉 벗어나고 싶었다.

정상성을 둘러싼 각종 삶의 위계로부터 교육과 노동, 가족을 둘러싼 기준을 파헤치는 일은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그중 간과하고 있던 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목사 딸의 백팔배’를 읽으며 알아차렸다. 어머니,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버무려진 세계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벗겨내기로 선택한 치열한 생존기 앞에서 나는 낱낱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옥에 떨어지는 꿈을 자주 꿨다. 할머니는 지옥도를 보여주며 악한 일을 하면 이곳에 간다고 했다. 죄에는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음란 마귀가 씌었으니 몸 간수 잘하라는 하나님/할머니의 말씀이 박혔다. 모부(부모)는 교회에서 다정한 부부로 읽혔지만, 집을 나서기 전 어떤 놈 꼬시려 붉은 립스틱을 바른 거냐는 아빠의 폭언을 읽는 이는 없었다. 이혼을 고민하던 엄마에게 신도들은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하는 게 사랑’이라며 엄마의 죄를 말렸다. 살기 위해 이혼한 엄마를 제일 먼저 외면한 건, 선교사와 목사인 엄마의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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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애인과 섹스한 뒤 울며 헤어지자고 말한 오후를 기억한다. 너는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다시 새겼으니, 너와 나는 죄인이다. 상대가 믿는 종교를 함부로 재단하고 불교를 빠져나와야 한다고 재촉하던 나를 기억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돕겠다며 선의만 앞세우던, 잔인하게 반짝이던 내 눈동자를 기억한다.

연루자가 아닌, 우월한 구원자 위치에 도취한 나는 얼마나 자신만만했던가. 옳음 앞에서 부끄러움이란 없었으므로. 당시 내게 세상은 뚜렷한 선악으로 나뉘었고, 이분법에 갇혀 있던 나는 타자의 의외성을 ‘그름’으로 재단했다. 세상의 뚜렷한 기준은 하나님 말씀으로 정당화되었고, 기준에 대한 의심은 죄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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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의 말씀이 뒤엉킨 가족주의와 개신교의 혼합물 속에서 자신을 단죄하며 살아왔던 ‘목사 딸’ 작가에게 ‘가출’은 부모에게서 벗어나는 일만이 아니다. 세계관과 언어, 생의 근간을 뒤엎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족과 종교를 이해하고자 애쓴 사랑의 회고록이자 절대적 세계에 직면하는 투쟁기이며, ‘옳음’의 기준을 의심하고 새 삶을 세워가는 한 인간의 탄생기다. 기준을 무너뜨리고 다시 무너뜨리는 일이야말로 내가 ‘말씀’에서 벗어나 나만의 언어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기억해 낸다.

목사 딸은 자신의 세계를 굽히듯 무릎 꿇고 백팔배를 시작하며, 왈칵 눈물을 쏟는다. “이게 뭐라고, 절대로 다른 곳에는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나.” “각양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것들에게, 또한 마찬가지로 외면받아 온 ‘그저 인간’일 뿐이었던 나에게 이제야 첫인사를 건넨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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