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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September 16, 2026

“신동재는 사형장이었다”…80년 만에 술독 올리고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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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과 10월항쟁80주년행사위원회가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재’에서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김규현 기자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과 10월항쟁80주년행사위원회가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재’에서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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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한 잔 다 올릴라카이, 잔을 헤아릴 수가 없지 않습니까.”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재’에서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제삿상에 술독을 올리며 말했다. 그는 작은 항아리 크기의 술독에 1987년부터 신동 마을에서 생산하는 ‘신동막걸리’를 여러병 가득 따라 부었다. “생전에 드셨던 막걸리겠지요? 술은 최대한 많이 감질맛 나시지 않도록 올리겠습니다.” 신동재 골짜기는 순식간에 달달한 냄새로 뒤덮였다. 신동막걸리는 바나나우유 맛이 난다고 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과 10월항쟁80주년행사위원회는 이곳에서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올렸다. 신동재에서 추모제가 열리는 것은 10월항쟁이 일어난지 8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제를 올리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가파른 고갯길 너머에서 산악바이크 군단이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수차례 내려왔다. 신동재는 ‘칠곡군 산악자전거길’ 코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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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과 10월항쟁80주년행사위원회가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재’에서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김규현 기자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과 10월항쟁80주년행사위원회가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재’에서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김규현 기자

신동은 1904년 왜관역이 만들어지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동재를 넘어가면 대구, 왜관, 김천으로 가는 4번 국도가 나있었다. “(사람을 실은) 트럭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나있고, 골짜기가 깊고, 마을과도 멀고, 학살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겠죠.” 김 이사장이 굽이굽이 난 국도를 가르키며 말했다.

칠곡은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인 1946년 10월항쟁 당시 가장 큰 봉기가 일어난 곳 가운데 하나다. 당시 대구에서 미군정 식량 정책에 반발한 대규모 봉기로 10월2일 계엄령이 내려지자, 봉기는 경북을 포함한 전국으로 번졌다. 칠곡에서는 10월3일 새벽 2000여명의 시위 행진이 칠곡경찰서를 공격해 서장 등이 희생됐다. 서장 장례식이 있던 10월5일 밤 분노한 경찰들은 길거리에 보이는 시민들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쐈다. 이날은 음력 9월9일 중양절로 곳곳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던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10월항쟁에 앞서 같은해 7월에는 “미군이 일본으로 쌀을 빼돌린다”며 “왜관 쌀을 주민에게 배급하라”고 요구하며 일으킨 ‘왜관식량사건’도 있었다. 그해는 대구·경북은 흉년과 콜레라가 번진데다가 미군정의 식량 곡출로 ‘쌀을 달라’는 시위가 자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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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칠곡 지역 10월항쟁이 일어났던 옛 칠곡경찰서는 현재 칠곡경찰서 왜관지구대로 쓰이고 있다. 김규현 기자
1946년 칠곡 지역 10월항쟁이 일어났던 옛 칠곡경찰서는 현재 칠곡경찰서 왜관지구대로 쓰이고 있다. 김규현 기자

해방 뒤 일어난 칠곡의 비극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격화됐다. 칠곡은 최후의 방어선이자 최대 격전지였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좌익을 색출해 전향시킨다는 명목으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고, 10월항쟁 관련자, 대구형무소와 김천형무소 재소자, 주민 등을 무차별적으로 가입시켰다.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신동재에서만 20여차례에 걸쳐 민간인 수백여명이 군인 등에 의해 희생됐다. 칠곡에서는 신동재를 포함해 유학산 기슭의 ‘팥재’, 대구와 경북의 경계인 ‘돌고개’ 등도 대표적인 학살지로 꼽힌다. 특히 팥재에서 희생된 이들은 대분분 농민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지난 2010년 제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서도 밝혀졌지만, 대구 가창골이나 경산 코발트광산 등 비슷한 민간인 학살 사례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시민단체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백비’(이름 없는 비석)을 세워뒀는데, 3년 전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말로는 “신동재는 사형장”이라고 할 정도였지만, 이제 이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조차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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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민간인 학살터인 유학산 기슭의 ‘팥재’에서 옛 신문 기사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민간인 학살터인 유학산 기슭의 ‘팥재’에서 옛 신문 기사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김 이사장은 “가창골과 코발트광산 외에도 칠곡을 포함해 경북 지역에만 20여곳이 넘는 학살지가 있다. 10여년 전 가창골에서 처음 제를 올릴 때에도 위령비가 세워질 거라곤 아무도 상상 못 했다. 칠곡도 오늘 추모제를 시작으로 위령비와 추모시설이 들어서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하고,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역사 현장이 되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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