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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8, 2026

[엄기호의 악당과 위선자]먹고사니즘과 어포더빌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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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을 이끈 개념은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이다. 어포더빌리티는 주거의 관점에서 보면 주거 안정성이며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의 관점에서는 구매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가격 접근성이다. 관세와 전쟁으로 어포더빌리티를 불가능하게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센 반발이 이번 중간선거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어포더빌리티는 민생, 혹은 ‘먹고사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민생을 중심으로.” 한국 정치인들이 “정쟁을 중단하고”라는 말 뒤에 항상 붙이면서 자신들을 정당화할 때 쓰는 말이다. 정치의 효용성은 오직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시민을 정치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먹는 입’으로만 본다. ‘먹는 입’만 만족시키면 ‘말하는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이 ‘먹고사니즘’에 깔려 있다. 민생 혹은 먹고사니즘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시민을 ‘말하는 입’의 존재로 보지 않는 시선이 담겨 있다(<말하는 입과 먹는 입>은 연세대 김항 교수의 책 제목이다).

그러나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와 같은 신진 정치인들이 말하는 어포더빌리티는 이런 먹고사니즘과는 다르다. 맘다니는 선거 결과를 놓고 이렇게 평가했다. 지금까지 어포더빌리티가 트럼프와 공화당에 의해 파괴되고 위기에 처한 일하는 사람들과 평범한 미국인들의 식료품과 주거, 그리고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방어’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선거 승리와 함께 좀 더 공격적으로 어포더빌리티를 주장하고 실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의 삶의 안녕에 ‘기여’할 권리

어포더빌리티를 좀 더 철학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 삶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인 셈이다. 아마르티아 센이 말했듯 핵심적인 재화와 사회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하고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역량을 박탈당한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어포더빌리티는 인간이 삶의 필수 조건에 접근하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돈 몇푼 쥐여주거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그 일자리를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의 사회적 존재감은 ‘기여’를 통해서 온다. 나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으로 전승될 때, 돈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때 인간은 ‘내가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존재감의 고양을 경험한다.

사회적 장에서 서로의 삶의 안녕에 ‘기여’하는 자가 이웃이다. 이 점에서 텍사스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제임스 탈라리코가 선거 캠페인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를 선거 구호로 사용한 것은 징후적이다. 그는 공화당과 기득권자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웃을 혐오하고 적대하는 데 맞서기 위해 이 구호를 사용했겠지만, 이 말의 동시대적 의미는 훨씬 심층적이다. 이 시대의 주류 기득권은 주변화한 이들이 공적 담론에서 이미 이웃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이웃이 돼 살아갈 가능성을 박탈하며, 기껏 자신의 커뮤니티 안에서만 이웃으로 갇혀 살아가기만을 허용할 뿐이다.

맘다니가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존재감의 고양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공원의 음수대를 고쳐달라는 어린이의 민원을 해결하는 짧은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영상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나선 맘다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소원이 이뤄져 기뻐하는 어린이에게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는다. 대신 수리된 음수대를 보고 기뻐하는 어린이를 바라보며 함께 기뻐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비춘다. 다른 공공 일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높이는 데 주목한다. 맘다니가 시장으로서 느끼는 기쁨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의 가능성 여는 정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세 기쁨이 만난다. 문제가 해결된 시민의 기쁨, 시민이 기뻐하는 것을 지켜보는 노동자의 기쁨, 이 두 기쁨이 만나 사회적 관계로 이어지도록 정치를 펼치는 시장의 기쁨. 이렇게 이들은 서로의 ‘이웃’이 된다. 바로 이 점에서 어포더빌리티는 단순한 민생이나 먹고사니즘을 넘어 시민이 어떻게 살 때 그것을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사상’이 반영된 개념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감은 이웃에 대한 기여에 있다.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자신도 이미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 속에 노동을 통해 이웃에게 기여할 수 있는 삶, 사회적 존재의 가능성을 돌려주는 것, 그런 어포더빌리티가 정치의 본업이라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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