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식민지배의 불법무효와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의 길 [기고]
2010년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해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1000여명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주도한 이 성명에는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을사조약과 한국병합조약은 불법이므로 한국식민통치는 무효”라는 획기적인 내용이 담겼다. 일제의 식민통치 불법무효론은 1919년 3.1 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2019년에 채택한 한일시민공동선언과 2025년의 한일기본조약 체결 60주년 한일시민공동성명에도 담겼다.
그러나 이 사이에 집권한 일본의 아베 정권은 역사인식을 1945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그러자 공동성명을 주도한 한국 측 발기인들은 한일기본조약의의 모태가 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중심으로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호주의 전문가들이 10여 년간 다섯 차례의 국제순환포럼을 개최해왔고, 연구와 토론의 결과물을 집대성해 최근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Beyond the San Francisco System)’라는 제목으로 영문 단행본을 출간했다.
책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세 단계를 거치면서 그 성격이 바뀌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1945〜1947년 미국이 강화조약을 조기에 추진하던 시기로 전범국가 일본을 해체하여 아시아의 농업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1948〜1950년 소련을 배제한 채 단독 강화를 추진하던 단계로써, 사실상 강화조약을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 개혁’에서 ‘일본 부흥’으로 목표를 바꾼 것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1950〜1953년까지로 일본을 사실상 패전국이 아니라 냉전의 파트너로 인정한 것이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전쟁범죄 추궁은 사실상 없어지고 식민지 범죄문제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으면서 카이로 선언 및 얄타 선언 취지와는 별개의 내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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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하라 기미에 교수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역사분쟁과 영토분쟁을 유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미해결의 문제(unsolved problems)의 씨’를 뿌려놓았다고 지적하였다. 일본의 이종원 교수는, 미중 대립의 심화 속에 인도태평양 동맹 강화와 쿼드(Quad)체제, 그리고 동아시아의 나토화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졸업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체제 2.0으로 진화·구체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태진 교수는 을사조약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고종 황제의 서명 조작 사건과 더불어 하버드대의 맨리 허드슨 교수가 1935년에 강박에 의한 국제조약의 대표적 사례로 을사조약을 들면서 이 조약이 역사적으로 무효라고 검토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또한 이 교수는 1963년 유엔 국제법위원회(ILC)가 강제로 체결된 조약의 사례로 을사조약을 거론했고, 이를 조약법상 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사례로 평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도츠가 에츠로 교수가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 보관된 ‘을사보호조약 원본’의 형식과 내용에서 제목과 서명이 없는 등 중대한 결함을 발견한 것과 맞물려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애초부터 조약이 날조·변조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번 책 출판의 편저자인 김영호 전 장관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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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책 출간을 계기로 국제순환포럼 참가자가 중심이 되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유엔 헌장 정신과 세계인권선언의 정신과 너무나 어긋나고 유엔이 가장 중시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정반대임을, 세계의 양식 있는 지식인 1000인의 이름으로 공동성명을 내보려고 했다. 1963년도 유엔 국제법위원회에서 세계 최악의 국제법의 하나로 을사조약을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면 일본도 을사조약의 불법무효론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못했다.”
비록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10여년 간에 걸쳐 70여년 전에 성립한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한 역사적·국제적 평가 과제를 학문적으로 주도했다. 이제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에 면죄부를 주었던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 체제를 넘어서는 국제적 평가를 겸허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16년 전에 한일지식인 1000인의 일제 식민통치 불법무효 공동성명의 성과를 다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역사적·국제적 재평가로 연결시킨 작업이야말로 ‘파옥(破獄)의 월장(越牆)과 같은 행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지난 10여년의 시도가 샌프란시스코 체제 2.0이 아니라 만국활계(萬國活計) 평화체제의 한류라는 성과로 계속 확대재생산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나는 이러한 노력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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