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이란 제재는 국제법 위반” 만장일치 채택…이란·UAE 타협 끌어낸 인도 외교력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3일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타스연합뉴스
중국, 인도, 러시아가 참여하는 비서방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BRICS) 회원국 정상들이 이란에 대한 일방적 제재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중동 지역에서 분쟁 자제를 촉구하는공동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브릭스 정상들은 제18차 브릭스 정상회의 첫날인 12일(현지시간) 140개 항으로 구성된 ‘뉴델리 선언’에서 “우리는 중동·서아시아 지역의 긴장 고조가 지속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각국이 최대한 자제하고 상황을 악화시킬 행동을 삼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유엔 헌장에 따라 민간 기반시설을 보호하고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에너지와 공급망의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할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언급했다.
선언은 “우리는 국제법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관련 결의안을 위반하여 민간 기반 시설과 IAEA의 완전한 안전조치하에 있는 평화적 핵시설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월 미국이 대이란 공습을 재개하면서 다르호빈 원전 건설 현장을 타격한 것을 규탄한 것이다. 다만 미국, 이란 등 당사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선언은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강제 이주시키는 행위와 가자지구 영토의 지리적 또는 인구 구성적 변화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두 국가 해법’에 따라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 가입을 촉구했다.
선언 채택은 지난 5월 브릭스 외교장관회의에서 중동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공동성명을 내지 못했던 것과 대비된다. 미·이란 전쟁 국면에서 이란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미군 기지를 공격해 사실상 대리전을 치른 양국의 입장 차가 합의 도출 실패의 주된 원인이었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12일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집중적인 심야 협상 끝에 선언이 채택됐다고 13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선언에 앞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UAE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왕세자 셰이크 칼레드 빈 모하메드 빈 자예드 알 나얀 왕세자 간 회담이 성사됐다. 지난 2월 미국 공습으로 시작된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란과 UAE 고위급 인사가 회동한 것은 처음이다.
인도는 이란과 UAE의 의견 조율에 나섰으며, 공동 성명을 도출해야 한다는 회원국들의 공감대를 모았다. 모디 총리는 지난 11일 페제시키안 대통령을 만나 이란에 대한 연대를 확인했으며 ‘평화적 핵시설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구절을 성명에 포함시켜 이란의 동의를 끌어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련의 과정에서 이란 측과의 공개적 직접 접촉을 하지 않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이란과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외교 수장들은 오는 14일 오만에서 고위급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역시 미·이란 전쟁 이후 처음으로 전쟁 당사국들이 얼굴을 맞대는 자리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가 미국이 하지 못했던 ‘이란을 테이블로 불러내는 일’을 했지만, 실질적인 중동 정세를 바꿀 수 없다고 평가했다. 반면 로이터통신은 “공동성명은 현재의 지정학 구도에 미칠 가능성은 낮지만 신흥 국가들의 단결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뉴델리 선언은 회원국 간 효율적인 국경 간 결제를 위해 현지 통화를 사용한 무역 결제와 투자 촉진을 권고했다. 그렇지만 달러를 대체하는 ‘단일 통화’를 도입하겠다는 문구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각국의 우선순위를 존중하며 누구에게나 맞는 접근법은 없음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달러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비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모디 총리는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 연설에서 “브릭스는 누구에게도 적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시 주석과 모디 총리는 12일 오후 정상회담을 하며 양국은 협력 파트너라고 선언하고 국경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력에 직면한 중국과 인도가 해빙을 넘어서 협력을 확대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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