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 차단했어요” 부모와 연 끊는 자녀들 부쩍 늘어나는 이유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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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는데, 대체 왜 연락을 끊었을까.”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독자 코너에 보낸 사연이다. 그런데 부모를 차단하는 자녀 고민을 하는 건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WSJ은 최근 부모와 성인 자녀의 관계 단절 문제를 조명하며 가족 문화의 새로운 변곡점이 왔다고 짚었다.
WSJ 보도에 따르면, 올여름 미국 시카고에서는 자녀와 연락이 끊긴 부모들이 모인 콘퍼런스가 열리자 200명 넘는 부모가 현장을 찾았고 약 250명은 온라인 생중계를 시청했다. 호주에서 찾아온 부모도 있었다. 28세 아들과 3년째 연락이 끊긴 은퇴 행사기획자 로빈 브릴(60)은 부모들이 공통으로 품은 질문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체 왜 이 아이들이 이런 일을 하려는 걸까요?”
부모 자녀 간 단절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유고브가 지난해 7월 24일부터 8월 1일까지 미국 성인 4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8%는 부모·자녀·형제자매·조부모 등 가까운 가족 중 누군가와 현재 관계가 단절된 상태라고 답했다. 부모와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16%, 성인 자녀와 관계가 끊어진 부모는 10%였다. 부모와 관계가 단절된 응답자 중 38%는 자신이 먼저 연락을 끊었다고 답했다. 부모가 먼저 관계를 끊었다는 응답은 20%였다. 반대로 자녀와 단절된 부모에게 물었을 때는 46%가 자녀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고 답했다.
관계가 끊어지는 이유는 다양했다. 부모와 관계를 단절한 성인 자녀들은 부모들의 조종하거나 통제하려는 행동(34%),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34%)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거짓말이나 배신도 31%에 달했다. 반면 자녀와 단절된 부모들은 거짓말이나 배신(24%),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의 차이(21%), 이혼으로 인한 갈등(20%)을 주요 원인으로 들었다.
이런 갈등을 둘러싼 환경도 달라졌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부모의 통제와 정서적 학대를 설명하는 심리 콘텐츠가 확산하고, 가족과 거리를 두는 일을 자기 보호나 건강한 경계 설정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과거에는 가족 문제를 집안에서 감내해야 할 일로 여겼다면, 이제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관계를 끊을 권리도 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네소타대 가족사회과학 명예교수이자 가족치료사인 윌리엄 도허티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문화적 변곡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가족과 연을 끊는 일이 금기시됐지만, 이제는 용인될 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 보호를 위한 선택으로 지지받는다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도 지난 1월 가족 단절을 ‘조용한 전염병’에 비유하며,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부모와 성인 자녀의 관계 단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주심리학회 최고경영자 제나 버지스는 정신건강 문제와 가족 내 편애, 중독, 폭력, 사랑과 소속감을 충족하지 못하는 관계 등이 단절의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온라인에서 ‘트라우마’와 ‘경계 설정’ 같은 심리 용어를 접한 사람들이 가족관계를 스스로 진단하고, 이를 기존의 갈등을 해석하는 틀로 받아들이는 현상도 짚었다. 심리치료사 캐서린 카발로는 가디언에 “젊은 세대가 가족에 대한 의무를 이전 세대와 다르게 받아들이며, 개인의 정서적 성장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불편한 관계를 감내하려는 의지를 약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규범은 약해진 반면,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감수하면서까지 가족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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