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앞에서, 청소년이 말해야 하는 이유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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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영 |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청소년
40도라는 기온은 사막에서나 보는 숫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유럽 기온이 40도를 넘어섰고, 한국 기온도 40도 이상을 기록했다. 놀라운 수치이지만, 이제는 신기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는 분위기다. 40도를 넘어서다가 34도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그저 여름이 잘 지나가겠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 내가 사는 울산에서도 에어컨을 찾는 게 일상이 됐다. 물론 이번 여름만 특별히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작년 여름에도 더웠고, 재작년 여름도 더웠다. 지금만큼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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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기후 문제를 이야기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 한 톨도 없었다. 나 같은 초등학생들도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걱정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무관심에 대한 좌절감을 느꼈고 그 무관심은 오늘날 40도라는 폭염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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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었지만, 초등학생이 혼자 어디에서 말할 곳도 없었다.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키우는 자리를 찾아보았다.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있었고, 한국의 마지막 석탄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는 강원 삼척에서 ‘9·15 기후 파업’을 진행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하고 싶었다. 2023년 9월15일, 학교를 빠지고 가족과 삼척으로 향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행진했고, 석탄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공사 현장을 직접 눈으로 살펴보았다.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데 왜 하필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지,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의 삶보다 당장의 돈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았다. 새로 짓는 일이라도 멈추게 하고 싶었지만, 그때 찾아갔던 발전소는 결국 다 지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발전소는 그런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는 듯이 잘 돌아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반대하지 않으면 그냥 진행되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렇게 무시하고 넘어간 것들이 기후를 더 나쁘게 한다. 반대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기후가 악화되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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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2020년 기후헌법소원을 청구한 바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말은 늘 나오지만, 그것을 해결할 만한 실제적인 법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시위에 참여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지금의 법은 있으나 마나이니 새로 강력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 또한 2024년 열린 ‘4·19 기후 파업’에서 기후헌법소원 결정을 촉구하는 국민참여의견서를 제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름에는 열사병에 걸릴 것처럼 너무 덥고 비가 많이 온다고, 빙하가 계속 녹아내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울산이 물에 잠길 것 같다고, 그래서 종종 불안하다고도 썼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벌써 무슨 정치에 관심을 보이냐며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더위를 덜 겪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도 엄연한 한명의 시민이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기 의견을 펼칠 권리가 있다.

2024년,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했다며 입법 개선 결정을 내렸다. 결정 자체도 기뻤지만, 헌법재판관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것도 기뻤다. 희망까지는 아니어도 기대에 가까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결정 이후 2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입법 시한인 올해 2월28일을 국회는 그냥 넘겨버렸다.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한 목표도 입법에 반영하지 않았고, 그나마 정한 내용 자체도 부실했다. 확실하게 지키라고 만드는 법에 빠져나갈 구멍만 잔뜩 만들어둔다면 헌법소원 결정은 왜 내리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반도체 공장 건설 같은 큰 사업들을 새로 벌이겠다고 발표한다. 공장에 전기가 많이 필요하니 내가 사는 울산에도 원전을 새로 짓겠다고 한다.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지는 아직 정하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쓸 전기를 늘릴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순서가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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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회가 법을 정하는 과정에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청소년의 자리는 없다. 정해진 결과를 나중에 전해 들을 뿐이다. 사소한 참여일지라도, 나부터 목소리를 내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말할 수 있다. 달라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달라져야 하는 것이라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말할 것이다.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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