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표현하고, 도울 만하면 돕고 [양희은의 어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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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 가수
9월 첫 주말 성시경의 ‘자, 오늘은’ 공연은 날씨가 다 했다. 물론 나도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몇번 공연했지만 공원 내 88잔디마당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저녁 6시 공연이 시작되면 3시간여 걸리겠고 나는 마지막 순서라 종일 자리를 지켜야 한다(공연 전 리허설에 맞추려고 아침 10시 일산 집에서 출발, 밤 11시께 귀가하는 일정). 잔디마당이니만큼 일찍 오후 2시에 입장하는 이들이 앞자리를 선점할 테고, 3시 입장이면 뒤쪽. 그 후 입장은 완전 뒤의 뒷자리 차지가 될 거다. 무대에서부터 객석까지 특대 사이즈였다. 다들 가져온 비닐돗자리를 깔고 보니까 모처럼 너른 공간에 가슴도 시원했다. 해마다 ‘자, 오늘은’에 참여하는 기쁨은 숱한 후배들과 함께하는 귀한 기회라 기분이 좋다. 가수들 사는 동네며, 일정표들이 죄 다른데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오가는 일이 흔치 않으니 말이다. 출연진은 이렇다. 성시경, 권진아, 이재훈(쿨), 원미연, 김광진, 라이사, 거미, 김장훈, 양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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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연 전날 첫 리허설을 마친 후 연남동의 유명한 프렌치토스트 집을 찾아갔다. 그 공간을 즐기는 젊음들을 보니, 비싼 스테이크 먹듯 빵을 잘게 쪼개어 음미하며 먹는 외톨이 아가씨도, 둘이 바라보는 눈에서 불이 붙는 듯한 한쌍도 있었다. 바깥마당(테라스)은 개와 함께 오는 손님들을 위한 거란다. 폭신한 프렌치토스트도, 티 한잔 값도 수월치 않았다. 나처럼 뭐든 집에서 조달해 만들어 먹는 늙은 주부로서는 아까운 듯싶었지만, 매장 안 가득한 버터에 굽는 토스트 냄새가 맛보기 전에 이미 우리를 넘어섰다. 나가는데 직원이 오더니 내 노래 중 까마득히 오랜 옛 노래를 대면서 그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며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신중현 선생님과의 작업까지 얘기해서 놀랐다. 1973년에 나온 노래를 꼽다니…. 무언가를 대접하고픈데 드릴 게 이것밖에 없다며 귀한 차를 두가지 챙겨주었다. 세상에! 아르바이트생 서너시간 시급을 선물로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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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연 첫날, 파란 하늘이 예뻤다. 뭉게구름, 양떼구름, 새털구름, 비늘 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무대 장치랑 엘이디(LED) 화면들은 최대 크기로 설치됐다. 블록처럼 쌓아 올린 거대한 무대가 경이로웠다. 각자 가져온 깔개 위에 앉음새를 챙기는데(나이 제법 되는 이들은 바닥에 앉기 거북스러울 텐데), 아마도 40대 젊은이(?)들이 평균이라 괜찮을까? 젊은이들은 허리가 나가도 좋아요, 죽어도 괜찮아요, 너무 좋아요, 좋아 죽겠어요 한다. 저녁이 되며 바람결이 바뀌어 준비해 간 겨울 내복을 위아래 챙겨 입고 무대에 섰다. 사실 이런 무대는 늘 긴장되고 떨리고 제정신 차리기 힘들어 아무도 모르는 무대 공포와 싸우고 있지만 탁 트인 공간이 시원해서 그런대로 해냈다.
노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때쯤이면 노래를 부를 일도 떠나간다. 방송 동료인 최유라가 다녀가면서 “큰 언니, 컨디션 조절 잘해요. 대기실 의자도 편한 게 아니고 여기서 오래 대기하는 거 만만치 않겠더라. 오늘도 파이팅! 장난 아냐, 언니 컨디션으로. ㅜㅜ” 톡을 보냈다. 우리의 사례는 기다리는 값이다. 종일 대기하면서 컨디션 조절하고 말없이 자리 지키다가 가라앉은 기운을 끌어올려 짱짱하니 공연하는 게 일이다. 조용히 입 다물고 부를 노래를 복기하다가 순서대로 나가 무대에 선다는 게 보통 사람이 보면 독특하다고 느낄 게다. 축제 같았던 ‘자, 오늘은’은 마무리 잘 되었고, 결국 공연은 객석의 여러분이 만드는 거니까 출연진들 모두 애쓴 보람 있다고 서로 응원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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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여성시대’ 앞으로 온 짧은 사연 중에 임영웅 공연 티켓 구매를 혼자 힘으로 성공했으며 기다리고 기다려 얻은 기쁨이라고 자랑한 내용이 있었다. 나는 팬 덕질을 못 해봤다. 우리 때는 누구를 좋아하면 그냥 맘속으로 끝냈지 앞에 나서지도 못했는데, 최근 내가 한 덕질(?)이라면 도쿄에 가서 1박 하며 디자이너로 팝업스토어를 연 김신영의 꿈을 응원한 일이다. ‘행님아’ 시절부터 좋아했다. 가끔 방송국에서 보면 통통한 볼을 꼬집어 주다가 살 뺀 후엔 볼살이 없어져서 그만두었다. 이번에 현장에서 긴장하고 떨고 있던 신영을 보며 팬으로서 응원하는 중장년 아줌마들 마음을 알게 됐다. 수술 후에 내 몸 기운이 채 살아나기 전이었지만 너를 응원하는 게 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뭐 아픈 게 대수일까? 되도록 표현하고 도울 만하면 돕고, 지겹고 힘들었던 여름을 가을바람으로 날려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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