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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13, 2026

40년째 반환 중…용산기지 공원화는 ‘공간 주권’ 회복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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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사회적 합의로 이룬 국가 과제다. 40년 만에 귀환한 땅 용산공원은 인류세의 기후 위기에 대응할 생태 인프라다. 기본설계안 조감도. West 8 제공
서울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사회적 합의로 이룬 국가 과제다. 40년 만에 귀환한 땅 용산공원은 인류세의 기후 위기에 대응할 생태 인프라다. 기본설계안 조감도. West 8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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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의 공간이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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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년이 흘렀다. 지도에서 삭제된 땅, 용산 미군기지가 공원의 옷을 입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그 땅이 굳게 닫혔던 120년 세월만큼이나 험난하다. 기지의 공원화는 오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의 강을 건넜지만, 집값이 오를 때마다, 선거철마다 부동산 개발론과 주택 공급론이 어김없이 고개를 든다. 이토록 힘겨운 귀환. 용산기지 전체의 반환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용산기지 이전이 본격적인 국가 의제로 등장한 것은 1987년이다. 6월 민주항쟁 뒤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기지 이전을 공약했다. 서울 한복판 100만평 넘는 땅을 차지한 기지를 옮겨야 한다는 요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선 과정을 통해 비로소 국가 정책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1990년 한·미 양국은 용산기지를 오산과 평택으로 옮겨 1996년까지 이전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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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될 땅의 미래도 함께 논의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이듬해 ‘용산 군이적지 활용방안과 기본계획’을 마련했고, 이 무렵부터 ‘용산민족공원’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다. 이 명칭에는 단순히 대규모 녹지를 확보한다는 도시계획적 목표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임오군란 이후 청군이 주둔했고,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치며 일본군의 대규모 기지가 들어섰으며,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미군이 사용해온 불운의 땅. 한 세기 넘게 외국 군대가 점유한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회복의 의지가 민족공원이라는 표현에 포개져 있었다.

2006년 8월 24일,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 장면. 참여정부는 이듬해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약속이 마침내 법률이 된 것이다. 사진 노무현아카이브
2006년 8월 24일,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 장면. 참여정부는 이듬해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약속이 마침내 법률이 된 것이다. 사진 노무현아카이브

실제 반환도 일부 이뤄졌다. 먼저 반환된 미8군 골프장 자리에 ‘용산가족공원’이 조성됐고, 그 영역을 갈라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섰다. 미래 용산공원의 예고편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이전 계획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기지 이전 비용이 크게 늘어났고 북핵 문제와 안보 환경 변화도 변수로 작용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미국 쪽에 이전 보류를 요청했고, 1996년까지 기지 이전을 완료하는 계획은 결국 좌초됐다.

기지 이전은 멈췄지만 공원에 대한 사회적 상상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반환 일정이 불투명했던 1990년대에도 정부와 서울시,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용산의 미래를 계속 토론했다. 민족공원, 역사공원, 생태공원 등 다양한 구상이 제안됐고, 겹겹이 쌓이고 얽힌 장소의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2001년 기지 안에 미군 가족을 위한 고층 아파트를 신축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반환할 기지에 왜 영구 시설을 세우느냐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 논란은 기지의 장기 존치 문제를 다시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기지 이전 계획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더블유(W) 부시 대통령의 합의를 계기로 되살아났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연계해 새로운 이전 협정이 체결됐다. 이전 비용 부담과 협정 내용에 대한 논란은 거셌지만, 용산의 기능을 평택으로 옮긴다는 방향은 분명해졌다. 참여정부는 2006년 용산기지의 공원화를 선포했고, 이듬해에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했다. 반환될 땅을 국가가 공원으로 조성·관리한다는 원칙, 곧 막대한 개발 잠재력을 지닌 부지를 미래 세대를 위한 공공 자산으로 남기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법제화한 것이다. 특별법 4조 2항은 “본체 부지를 공원 외 목적으로 용도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용산공원은 처음부터 주어진 공원이 아니다.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공원을 택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결단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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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에 뒤이은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2011)은 공원의 비전을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열린 국가공원”으로 제시했다. 국제설계공모(2012)와 기본설계 및 공원조성계획(2018) 등을 거치며 공원의 밑그림도 차츰 구체화됐다. 그러나 공원은 아직 착공조차 하지 못했다. 땅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아파트 공급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뒤쪽 ‘어린이정원' 자리. 용산공원 기본설계안에는 남산 경관을 품은 오픈스페이스와 대형 호수가 계획되어 있다. West 8 제공
최근 아파트 공급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뒤쪽 ‘어린이정원' 자리. 용산공원 기본설계안에는 남산 경관을 품은 오픈스페이스와 대형 호수가 계획되어 있다. West 8 제공

평택 기지 건설과 이전 비용, 부지 수용 문제, 주민 반대, 한·미 군사 전략 변화 등이 얽히면서 이전 일정은 계속 늦춰졌다. 2017년 미8군사령부, 2018년 주한미군사령부, 2022년 한미연합사령부가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이전했고 현재까지 부지의 31.5%가 반환됐지만, 전체 반환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종합기본계획에 따르면 공원 완공에는 ‘N(엔, 반환 완료 시점)+7년’이 걸린다. 엔(N)년은 과연 언제일까. 몇년부터 환경 조사와 오염 정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역대 정부는 모두 공원 계획을 수립하고 보완해 왔지만 막상 반환을 앞당기는 데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토록 길고 험난한 용산기지 반환의 역사를 군사시설의 이전 과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 지난한 반환의 현장은 한국 근현대사의 공간적 압축판에 가깝다. 외국군의 주둔, 식민과 분단, 냉전과 한-미 동맹, 서울의 도시화가 같은 땅 위에 겹쳐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 용산기지는 오랫동안 시민의 접근이 차단된 금단의 땅이자 그 존재조차 잊힌 미지의 공간이었다. 군사기지를 시민의 공원으로 복권한다는 구상이 시작된 지 40년. 그 긴 시간이 용산공원의 불안한 미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용산공원이 왜 특별한 국가공원이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용산기지의 공원화는 빈 땅을 넓은 녹지로 가꾸는 사업이 아니라, 안보 논리와 국제정치 속에서 유예된 시민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이다. 공간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반환 이후 이 땅의 용도를 눈앞의 주택 수요만으로 바꿀 수는 없다. 군사기지의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고 분절된 공간을 연결해 온전한 공원으로 만드는 일까지가 반환의 완성이다. 용산공원을 아파트 공급 후보지로 삼는 순간 우리는 이 땅이 겪어온 시간을 삭제하게 된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신속한 주택 공급이 아니라 기지 전체의 완전한 반환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다. 되찾은 땅에 조성될 용산공원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거점이자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 인프라로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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