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 시의 세계]목소리
목소리 하나, 저 멀리서 당도한 목소리 하나
귓가에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북소리 같은, 감추어진, 목소리 하나가,
그럼에도, 또렷이, 우리에게 도착한다.
그 목소리 무덤에서 나온 듯해도
그 목소리 오로지 여름과 봄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 목소리 기쁨으로 육신을 가득 채워 주고,
그 목소리 입술에 미소의 불을 밝혀 놓는다.
그 목소리 나는 듣는다. 오로지 그것은 저 요란한
삶과 전쟁터를, 부서지는 천둥소리와 속닥거리는 수다를
가로질러 당도한 인간의 목소리이리라.
당신은? 이 목소리가 당신에게 들리지 않나요?
목소리는 말한다 “고통은 짧게 지나갈 겁니다”
목소리는 말한다 “아름다운 시절이 머지않았습니다.”
이 목소리가 당신에게 들리지 않나요?
- 로베르 데스노스(1900~1945)
1920년대 초현실주의 그룹은 자동기술법과 최면 실험으로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을 받아 적었다. 반수면 상태에서도 문장을 읊고 말놀이를 구사했던 뛰어난 영매 로베르 데스노스를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상찬했다. 둘은 브르통의 공산당 참여를 놓고 갈등 끝에 결별했지만, 데스노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체포돼 숨을 거두었다. 시선집 <알 수 없는 여인에게>(조재룡 옮김)에는 초기 시부터 후기 시까지 두루 실려 있다. 마지막 시집 <고장>(1944년)이 출간될 무렵 데스노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시의 화자는 간절하게 어떤 목소리를 기다리고 귀 기울여 듣는다. “저 멀리서 당도한 목소리 하나” “북소리 같은, 감추어진, 목소리 하나”는 바로 “인간의 목소리”다. “요란한 삶과 전쟁터를, 부서지는 천둥소리와 속닥거리는 수다를 가로질러” 마침내 당도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무덤에서 나온 듯하지만, 봄과 여름을 이야기하고 육신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준다. 목소리는 말한다, 고통은 짧게 지나갈 거라고. 아름다운 시절이 머지않았다고. 이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는 길지 않은 생의 마지막 계절을 견뎠을 것이다. 시는 이렇게 목소리로서, 소리 내어 발화되는 신체적 사건으로서 우리 앞에 도착한다. 그 목소리가 당신에게도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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