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 재산보호를 넘어 관계의 보호까지 나아갈 때 [전안나의 가사상속법가이드]

성년후견, 어떤 때 필요할까
상속 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등구조는 부모를 가까이에서 모시며 재산까지 관리해 온 자녀와, 멀리 떨어져 지냈거나 극심한 갈등으로 부모에 대한 접근 자체가 차단되었던 다른 자녀 사이의 갈등이다.
물론 부모를 모신 자녀가 순수한 마음으로 효도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고, 상속에 있어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기여분을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변호사로서 접하게 되는 실제 분쟁의 양상을 보면, 부모를 모시는 자녀가 부모의 치매 등으로 의사표현이 어려워진 시기에 거액의 예금을 인출해 사용처가 불분명한 현금 지출을 하거나, 부모의 의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에게 유리한 부동산 증여나 유언을 받아두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의사능력이 미약해진 부모를 부양하면서 그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사용한다면 부모가 사망한 뒤 상속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신 뒤 거래내역과 각종 자료를 뒤져 오래전 부모의 의사를 추정하고, 돈의 사용처와 적법한 권한의 유무를 가리거나 유언·증여의 효력을 다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보다 앞서 더 중요한 문제는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생활, 치료, 돌봄을 위해 써야 할 재산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피해를 입는 것이다. 판단능력이 약해진 부모의 재산과 권리를 생전에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성년후견제도이다.
성년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인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을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관리나 신상보호를 돕도록 하는 제도이다.
재산적인 측면만 보면, 선임된 후견인이 법원의 감독 하에 피후견인의 예금이나 부동산 등을 관리하게 하고 중요한 재산이 함부로 처분되지 않도록 한다. 즉 생전에는 부모의 재산을 온전히 부모 자신의 복리를 위해 사용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결과적으로 부모를 위해 사용하고 남은 재산을 안전하게 보전해, 사후 부모의 추정적 의사에 따라 자녀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
형이 3년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년후견은 단순히 ‘재산을 지키는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어디에서 생활하고 어떤 치료를 받을지,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지와 같은 피후견인의 삶 자체를 보호하는 신상보호가 더 본질적인 영역이다. 특히 판단능력이 저하되었다고 하더라도 신상에 관한 사항은 본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그러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다.
부모를 모시는 자녀가 다른 형제에게 부모가 입원한 병원이나 요양원의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거나, 직접 찾아가도 만나지 못하게 하고 통화마저 막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부모가 보고 싶어 하는 자녀를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면 이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과거 부모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가한 자녀여서 부모 스스로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라면 모를까, 부모는 자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오로지 자녀들 사이의 재산 다툼 때문에 특정 자녀와의 접촉이 차단되고 있다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노인에 대한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
가정법원이 후견개시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가사조사를 통해 확인된 부모의 의사나 그 밖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단절된 자녀와의 만남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면, 가사소송법상 사전처분을 통해 임시로 면회·교류의 방법과 조건을 정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 간 갈등이 심하다면 처음 몇 차례는 요양시설 상담사나 사회복지사 등 제3자가 함께하는 자리에서 만나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후견개시 심판을 하면서 피후견인의 가족·지인과의 교류나 통신에 관한 사항을 후견인의 구체적인 직무범위에 반영하고, 이후 후견감독을 통해 그 이행여부를 살펴보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가정법원이 모든 가정의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그러한 개입이 피후견인의 의사에 부합하고, 복리를 위해 시급하거나 꼭 필요하다는 점을 소명하여야 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가족간 접촉을 어떻게 보호하나
독일 민법은 피후견인의 교류를 정하거나 통신에 관한 결정을 하는 일을 후견법원이 후견인의 사무범위로 명시적으로 정한 경우에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영국(잉글랜드·웨일스)의 정신능력법(Mental Capacity Act 2005)은 누구와 어떠한 접촉을 할 것인지를 보호법원(Court of Protection)의 권한사항으로 규정하면서, 특정인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권한만큼은 법원이 선임한 후견인(deputy)에게 부여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후견인에 의한 가족 면회 차단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논의되고 있다.
성년후견의 목적은 재산을 잘 보존해 훗날 자녀들에게 공평하게 상속시키는 데 있지 않다. 그 재산이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본인을 위해 제대로 사용되도록 하고, 판단능력이 약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타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제는 재산을 지키는 후견을 넘어, ‘관계를 지키는 후견’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안나의 가사상속법가이드]에서는 이혼·상속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가족간 분쟁을 알기 쉽게 풀어보고, 현명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고자 합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전문법관 부장판사를 역임한 전안나 변호사는 현재 LKB평산 상속이혼센터를 이끌며 다양한 가사분쟁에 관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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