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를 희생하는 성장, 지속해야 하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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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정부는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수정된 제3차 사회보장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선별적 보호를 넘어 모두를 위한 복지’를 선언했다. ‘약자복지’라는 정체불명의 복지에 종지부를 찍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곤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X)에 “성장 포기 복지 확대는 있을 수 없고, 성장 복지 동시 확대는 이상적이나 비현실적이며 부득이하게 현재는 성장에 집중하여 파이를 키울 때라고 본다”는 글을 올렸다. 2022~2025년 연평균 성장률이 1~2%대에 머물렀던 현실을 생각하면,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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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식이 반영된 것인지, 2027년도 보건·복지·고용 예산 증가율은 9.3%로 전체 예산 증가율 12.8%에 미치지 못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그렇다. 지난 9월에 발표한 기초연금 개편안은 2027년부터 소득 하위 30%의 노인에게 월 38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2026년부터 소득 하위 50%의 노인에게 월 40만원을 지급하고 2027년부터는 수급자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도 마찬가지이다. 윤석열 정부는 생계급여 선정 기준을 2026년까지 기준중위소득의 35%로 높이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그 시점을 4년 뒤인 2030년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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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관점에서 보면, 복지정책은 이전 정부보다도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모두를 위한 복지’와 ‘기본사회’를 내건 정부가 ‘약자복지’를 외치던 윤석열 정부보다도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의 관계를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의 말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현실의 일면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제조업 대기업이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첨단 시설을 갖추고, 핵심 부품·소재·장비를 수입해 최종재를 수출하는 한국 경제에서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상승을 억제하고 복지지출로 대표되는 사회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진다. 독일과 같이 고품질 제조업 수출이 경제의 중요한 축인 국가들이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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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한국의 복지지출은 선진 자본주의 복지국가보다 한참 낮았다. 낮은 출발점은 기존 성장 방식을 전환하지 않고도 복지를 확대할 여지를 남겼다. 지난 15년만 보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은 2010년 7.4%에서 2024년 15.3%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은 20.5%에서 21.2%로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과 비교된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트럼프의 두번째 집권이 이어지면서 기존 자유무역 질서에 균열이 생겼다. 수출 여건이 불안정해졌다. 문제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내수가 취약해진 한국 경제에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 외에 마땅한 성장 동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의 수출에 더 매달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과 정부의 소극적인 복지정책은 어쩌면 한국 경제가 직면한 이러한 딜레마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부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지난 14일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반도체에 이어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 성장과 민생을 함께 잡겠다고 밝혔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을 키운다고 성장의 성과가 모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물어야 한다. 왜 우리가 분배를 희생해야만 가능한 성장에 계속 매달려야 하는가.
성장과 분배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느냐가 분배의 가능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부총리가 말한 ‘서비스 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추가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조업의 고도화’를 ‘지식 집약적 서비스 산업’의 발전과 연결하고, 국민 누구나 그 과정에 참여할 역량과 여건을 갖추도록 ‘양질’의 교육·훈련·돌봄·의료·주거를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이 더 많은 사람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고, 늘어난 구매력이 내수와 투자를 뒷받침하도록 수출에 편중된 성장을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확대는 이러한 전환의 필수 조건이다. 필요한 것은 분배를 누르는 또 하나의 성장이 아니라 성장 방식 전체를 전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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