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불완전할지라도, ‘가능한 사랑’
2011년 6월 평택역에서 부산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에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 70명이 올랐다. ‘희망열차 85호’라 이름 붙인 열차를 타고 한진중공업 해고자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한진중공업을 잘 모른다는 아들에게 장준호씨는 “아빠 같은 해고자들이 많이 생긴 회사”라고 설명했다. “외롭고 무섭죠. 여러분이 외롭지 않게, 말라 죽지 않게 응원하면서 저희도 꼭 이기겠습니다.” 부산에서 마주한 한진중공업 해고자 가족들에게 쌍용차 해고자 가족이 말했다.
2000년대의 첫 10년을 통과하는 시기,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 2000명 이상이, 2011년 한진중공업에서는 4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은 한진중공업 가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그는 관찰과 애정, 실천적 연대에 이어 ‘입장의 동일함’을 최고로 꼽았다. 노동 담당 기자로 동행했던 내가 어설픈 관찰자에 불과했다면,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해고자 가족들은 ‘입장의 동일함’ 속에 서 있었다.
쌍용차 가족들이 한진중 찾은 2011년
같은 상처 나눈 이들의 ‘입장 동일함’
이창동은 우리가 그 자리 설지 묻다
고통 곁 머무는 시간, 새 관계의 시작
15년 전 기억을 떠올린 것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가능한 사랑> 때문이다. 영화 속 SP중공업 집단해고는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또렷이 가리킨다. 영화는 막이 오르자마자 관객들을 쌍용차 해고자의 죽음이 잇따르던 때로 데려간다. 검은 옷을 입은 ‘호석’(설경구)은 쌍용차 엠블럼이 선명한 차를 몰고 동료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그곳에 카메라를 든 ‘예지’(조여정)가 있다.
예지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호석과 아내 ‘미옥’(전도연)에게 다가간다. 그는 미옥에게 친구로 지내자며 격의 없이 이름을 부르고 가까워지려 한다. 하지만 미옥과 예지 사이엔 좁히기 어려운 거리가 존재한다. 미옥과 호석의 깊은 고통이 드러나는 순간 예지는 눈을 빛낸다. 미옥은 예지의 비싼 옷, 부자 남편 ‘상우’(조인성), 그 부가 있기에 가능한 자유를 선망한다.
예지의 카메라가 드러내는 탐욕스런 시선은 불편하지만, 예지가 미옥과 호석을 영화를 위한 대상으로만 대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큐멘터리를 위해 그들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라는 예지는 미옥과 호석을 ‘관찰’하고 ‘사랑’하려 애쓰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그 격차에서 빚어지는 긴장과 욕망이 파열음을 내며 영화를 이끈다.
하지만 애초에 노력으로 거리가 좁혀질 수 있는 것일까? 성자가 아닌 불완전한 우리 대다수에게 ‘입장의 동일함’은 도달 불가능한 이상처럼 보인다. 이 질문에 관한 답을 찾지 못해 이 감독은 <가능한 사랑>을 만들기까지 오래 망설이고 헤맸다. 그 결과 그 질문 자체를 영화로 만들기로 한다.
쌍용차 정리해고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거대한 트라우마였다. 대규모 정리해고와 옥쇄파업, 공권력의 폭력 진압 이후 33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다. 사회적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이를 계기로 각인됐고, 이들을 돕고자 하는 사회적 치유와 연대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가능한 사랑>은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 감독의 곱씹음이자 응답인 셈이다. 이 감독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쉽게 고통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하지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냉소하지도 않는다. 미끄러지고 어긋날지라도 귀 기울이고 손 내밀어보는 것, 그러한 시도가 실패한 이후에도 나아가는 삶에 관해 말한다.
해고자들의 고통을 공들여 그리는 영화 자체가 그 시도다.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뉜 노동자, 서로 마주치는 것 자체가 상처인 해고자들, 호석이 겪는 깊은 트라우마를 영화는 깊숙이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관객은 그들의 고통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서 진은영 시인은 말한다. “고통스러운 이야기에 함께 머무는 시간은 살던 그대로 살아가는 습관의 맹목성을 우리에게서 거둬가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고요한 공간을 열어주리라 믿는다.” 영화는 이러한 희망을 호석과 미옥이 함께 바라보는 보름달처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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