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라는 알을 낳은 두꺼비들을 만나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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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30일 오후 5시 무렵, 서울 충무로에 있는 작은 모임공간 ‘하제의숲’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추 70여명. 민청련 창립 43주년 및 ‘민청련 두꺼비 열전’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민청련, 정확히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은 43년 전인 1983년 이날 서울 돈암동 구석진 곳에 있던 한 가톨릭 수도원에서 창립했다. 1980년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투쟁’을 목적으로 내건 단체였다. 창립식은 경찰과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후 활동을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펼쳤다. 정권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결국 김근태 의장을 포함해 집행부 간부들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구속되었다. 탄압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민청련 청년들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버티며 싸워, 결국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냈다. 그 모진 세월은 투사들의 육신을 갉아먹었다. 많은 이들이 일찍 생을 마감해야 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먼저 간 이들에 대해 늘 미안함과 부채 의식을 안고 살아왔다. 이날 출판기념식에 많은 이들이 찾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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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창립식 때 부의장을 맡았던 장영달은 이날 “당시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 가운데 이젠 살아남은 이보다 먼저 간 이들이 더 많다”며 회한을 토로했다. 그 누군들 고문이 두렵지 않으며, 투옥이 겁나지 않겠는가. 자기 앞에 온 쓴 잔을 기꺼이 받아 든 자도 있고, 주저하며 회피한 자도 있었을 터이다. 이날 자리에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살아남은 자’의 자책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번 열전에는 총 9명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들 모두 요즘 말하는 평균수명보다 한참 전에 세상을 떠났다. 사실 민청련 참여자들은 그런 일을 예감했고, 감당하겠다고 다짐하며 나섰던 것이다. 그래서 내건 상징이 ‘두꺼비’였다. 민담에, 두꺼비는 산란기가 되면 천적인 뱀 앞에 나가 대든다. 뱀한테 잡아먹히지만 그 뱀의 위장 속에서 알이 부화하여 뱀을 죽이고 수천수만의 두꺼비로 재탄생한다. 민청련 청년들은 자신이 전두환이라는 뱀에게 기꺼이 먹히는 두꺼비가 되겠노라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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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에 소개한 이들 가운데 김근태와 김병곤은 알려진 인물이다. 나머지 7명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들이다. 민청련의 제갈량 이을호, 영원한 청년 이범영, 천하를 아우르는 넓은 품 최민화, 운동권의 여장부 백완승. 이름은 낯설어도 그들이 걸어간 삶의 궤적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길에 놓인 한장 한장의 보도블록과도 같다.
박혜숙은 최민화의 아내, 박문숙은 김병곤의 아내다. 백경진 민청련동지회 회장은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전에 그들은 늘 누군가의 아내로만 불렸다. 하지만 그들은 한 남자 활동가의 아내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독립된 활동가였고, 심지어 가사노동과 가족 부양의 책무까지 지면서 정치투쟁의 전면에 나선 위대한 투사들이었다”며 이번 열전에 이들을 특별히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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