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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1, 2026

‘무지와 사고 정체’에 빠진 일본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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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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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총회에 처음 참석했다. 총회 개막 직전 미-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직후 미-중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 세가지 일정은 일본 지도자와 언론의 ‘무지’와 ‘사고 정체’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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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와 언론은 당시 미-일 정상회담의 의미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 문제 등을 양보하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견제’라는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긴밀함을 확인했다”고 말했지만 역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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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총리는 당시 유엔 연설에서 유엔 헌장의 ‘적국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발효된 유엔 헌장 문구 때문에 일본·독일 등이 지금까지 ‘적국’으로 불리는 게 불명예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 헌장 개정은 중국을 포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전체와 회원국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지 못하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하지만 다카이치 정부는 중국 등과 적대 관계를 심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적국 조항’ 삭제 가능성은 제로(0)다. 다카이치 총리의 행동이 일본 국내를 겨냥한 ‘정치적 연기’일 뿐 실제 외교 과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유엔 총회 직후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선 “제2차 대전 때 미·중은 동맹국이 됐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일본 정부와 언론에 충격을 줬다. 이 말은 다카이치 총리의 ‘적국 조항’ 삭제 요구에 대한 뼈아픈 반박이기도 하다. 애초 제2차 대전 뒤 국제질서는 민주국가(미국·영국·소련·중국)가 파시스트 국가(일본·독일·이탈리아)를 타도했다는 서사 위에 구축됐다. 일본인으로서 당시 원자폭탄 사용의 정당성 등 묻고 싶은 대목이 있지만, 이 ‘거대한 서사’를 대신할 무언가를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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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은 양국 간 대립을 조율하기 위해 과거 파시즘에 함께 맞섰던 역사를 이용했다. 반면 일본 정치권과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배신’처럼 느끼고 당황한 채 허둥지둥했다. 일본 언론에선 “제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동맹국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국민당 체제의 중화민국이었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억지에 불과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과 싸웠던 ‘중국’의 지위를 계승하고 있다.

앞선 세가지 ‘외교 이벤트’에서 일본은 무거운 교훈을 얻어야 한다. 트럼프 미국 정부는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행동하고 있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중국과 대립 문제도 조정하는 유연성을 지녔다. 게다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방북에도 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현된다면, 일본으로서도 적군과 아군의 구도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만 따르면 된다는 식의 ‘사고 정체’ 상태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울러 일본의 현재 최대 외교 과제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자신의 이른바 ‘대만 유사시’ 발언으로 빚어진 중국의 대일 강경 대응 조처를 방치했다. 지난달 이와야 다케시 전 외무상이 일본국제무역촉진협회장 자격으로 방중해 왕이 외교부장(장관)과 회담했다. 중국 지도부도 대화 창구는 열어놓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일부 일본 언론은 이마저 이와야 전 외무상을 통해 다카이치 정부를 흔들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모든 것을 대립 구도로만 바라봐서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대미 의존, 대중 적대라는 ‘사고 정체’에서 당장 벗어나 일본이 살아갈 올바른 길을 고민하는 게 정치인과 언론에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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