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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16, 2026

시와 동화로 쓴 듯한 ‘지구적 서스펜스’…노벨상 물망 작가 국내 첫 소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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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멕시코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62)의 작품이 처음 국내 소개됐다. 소설 ‘타이가 열병’이다. 사진은 작가의 지난해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멕시코 작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62)의 작품이 처음 국내 소개됐다. 소설 ‘타이가 열병’이다. 사진은 작가의 지난해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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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소설 ‘타이가 열병’에 사로잡히기까지 책 펴들고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올해 소개된 국외 소설 가운데 단연코 감각적이면서도 심장하다.

무엇보다 저 아득한 진실을 내보이는 방식 덕분이 아닐까. 여기서 ‘진실’은 무엇인가. 이 세계의 기만과 좌절, 폭력과 공포다. 그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실에까지 독자를 이끌어 아연히 감각하게끔 작가가 꾀하는 여러 문학적 시도들, 개중 이를테면 유려한 리듬감의 연료가 책 마지막 23장 ‘플레이리스트’에 적시되어 있다. 2012년 작품을 펴낸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62)가 제 호흡에 집중해 글을 쓰던 기존 방식과 달리, 헤드폰을 끼고 소설을 쓰며 들은 음악들 목록이다. 존재들의 제각각 호흡과 접선하겠다는 듯 음악은 무척이나 다채롭다.

다 읽고 보면, 이 소설의 알짬과 진로는 1~3장에 꽤나 압착되어 있다. 가히 복선으로 들어차 있되 미로에 밀실과도 같아서, 아스라이 가늠이 될 뿐 인물들의 돌연한 말들이 무엇을 숨기고, 실은 다 드러냈는지 그때는 알지 못한다. 가출해 광막한 숲 지대 타이가 쪽으로 가버린 아내를 찾아 달라는 남자가 여자 탐정과 나눈 대화를 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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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잃었습니다. 다른 남자와 떠났습니다.”

“그 여자는 헨젤인가요, 그레텔인가요?”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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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동화가 아닙니다” “이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끝난 이야기겠죠.”(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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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떠난 여자가 남자에게 보내왔다는 전보.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그리고 제안을 수락하는 탐정의 속말. “그토록 멀리 간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점잖은 목소리로 앞서 제시한 단서는 이러했다.

“타이가의 어떤 주민들은 끔찍한 불안 발작을 겪으며 그곳을 벗어나려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여정을 감행한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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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가 ‘타이가 열병’이다. 지난 수사는 실패로 얼룩졌고 그마저도 오래전 손 뗀 이가 괴이한 ‘여정의 감행’을 수락한 연유엔 여자의 생략된 과거가 있다. 어떤 상처에 붙들린 과거일 터, 의뢰인은 그 사정을 이미 아는 듯한 기미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기미의 서사’는 작중 내내 전개되는 방식이다. 특히 폭력과 죽음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현시될 만한 때면 여지없다. 고통과 공포가 결정체만 ―기억으로― 남듯 언어도 분절된다.

“그들의 발소리. 그들의 횃불. (…) 갑자기, 어둠의 한복판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 그들의 울부짖음. 이 메아리들. 결코 필요하지 않다, 잔인함은. 잔인함은 그저 있다.”

이는 “공포가 기억난다”는 탐정의 언사로도 아울러지거니와, 대개 종잡을 수 없으나 다들 실체적이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하”니까.

“발견되기를 바라는 듯” 경유하는 곳들로부터 여자가 부친 전보와 편지를 토대로 탐정은 타이가 쪽으로 향한다. 현지 남자 통역과 함께 여자가 “부스러기”처럼 남긴 흔적을 하나씩 그러모은다. 탐문은 도망한 두 남녀에 관할 뿐 아니라, 선뜻 탐정 자신의 삶에 관한, 진실에 닿는 언어에 관한 사념을 불러온다. 아니, 그 사념이 곧 탐문이라서, 의뢰인에게 ‘보고’하겠다며 탐정이 정제하려던 문장들은 이윽고 길을 잃는다.

추리 형식을 띠는 소설에서 구체성과 정확성을 결여시키는 격인데, 까닭을 알 만하다. 탐정의 질문은 어느새 “이상한 건 그 여자가 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여자가 그토록 오랜 시간 그(남자)의 곁에 머물렀다는 사실”로 바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애당초 탐문의 대상은 도망한 두 남녀가 아닌, 그들에게 숲을 선택하도록 만든 세계인 것이다.

소음과 폭력 가득한 도시 세계로부터 남녀는 도피하지만, 타이가 일대 또한 벌목꾼과 산업 자본에 노출되어 있다. 야만과 야생, 욕망과 이성 사이 위험이 도사리고, “그 모든 것의 끝”일 듯해도 “만국 공통의 윤락”(여성 매매·착취)이 침범해 있다. 하여 탐정의 말마따나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밀고하는 일”이 된다. 작가가 삽화 내지 소재로 작중 심어둔 동화 ‘헨젤과 그레텔’(엄마가 남매를 숲에 버린다)로부터 웃자란, 더 잔혹한 세계라고 해야 할까.

타이가 열병 l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 지음, 안태운 옮김, 물결점, 1만6800원
타이가 열병 l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 지음, 안태운 옮김, 물결점, 1만6800원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리베라 가르사는 1964년 미국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 북동부 타마울리파스 주에서 태어나 두 국가를 오가며 역사와 창작을 가르치고, 작가로 활동해 왔다. 초기 멕시코 정신병원 환자의 삶을 연구 기록하며 논문, 논픽션, 소설로 확장해 왔을 만큼 그의 작품은 실체적이고 논리적이다. 자신의 여동생이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한 1990년의 ‘페미사이드 사건’을 추적한 ‘릴리아나의 불멸의 여름’(2021)으로 24년 미국 퓰리처상(전기 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역사학자로서의 학문적 배경”을 갖고, “창작 역시 철저한 조사와 구조의 엄격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문학적 허용이라는 이름의 부주의를 경계한다”고 강조해 왔다. 와중, “가장 픽션다운 픽션”이 ‘타이가 열병’이다. 게다 2014년 대담에서 밝힌 대로 자신의 소설 가운데 “가장 짧고, 가장 빠르게 쓴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설에도 규칙이 있겠는가. 아무렴, 그래 보인다.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다”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기란 어렵다”는 탐정의 되뇜. ‘상상한다’가 아니라 “기억난다” “기억된다”는 수사에 따라 전반의 서사가 전개되는 구조대로, 오늘날 세계에 내재하고 증식하는 공포와 불안을 기억하고, 도망이 불가피한 삶을 증언하는 자가 탐정이다.

가장 짧고, 가장 빠르게, 그러나 가장 길고 아름다운 시 한편, 가장 오래되고 어두운 동화 한편처럼 소설은 완성되어, 이제 학계에선 “라틴 아메리카의 실제 문제에 대한 허구적 표현”으로도 작품을 읽는다. “사랑의 끝 너머”까지 가겠다는 이들의 그 너머는 낙관할 수 있을까. 탐정이 마침내 만나 물었을 때, ‘도망자들’은 어깨를 으쓱하고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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