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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21, 2026

비쌀수록 잘 팔린다더니...“이제 아무도 안 사” 추락하는 명품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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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홈페이지 갈무리

루이비통 홈페이지 갈무리

“비쌀수록 잘 팔린다.” 최근 몇 년 동안 명품 브랜드들이 고수해온 성장 공식이다. 가방 가격이 수백만원씩 뛰어도 ‘지금 사지 않으면 더 비싸진다’는 심리가 소비를 자극했고, 브랜드들은 잇따른 가격 인상을 매출 성장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LVMH의 주가는 올해 들어 약 35% 떨어졌고, 구찌는 12분기 연속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 명품을 사던 소비자 상당수는 지갑을 닫거나 화장품·향수 같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은 사치’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 등 해외 매체들은 명품 소비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소비자들이 고가의 가방이나 신발보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화장품·향수 등에 돈을 쓰는 ‘립스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불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천유로짜리 상품을 사는 대신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소비 만족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증시를 보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시가총액이 루이비통의 모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넘어선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15일(현지시간) 로레알의 시가총액이 약 2030억유로(약 323조원), LVMH가 약 2010억유로(약 320조원)를 기록했다. 프랑스 증시에서 명품이 아닌 기업이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로레알의 기업가치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커졌다기보다 최근 몇 년간 LVMH의 기업가치가 크게 낮아진 결과다.

그렇다면 LVMH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LVMH 전체 매출이 하락한 건 아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386억4400만유로(약 61조5000억원)였고, 2분기 전체 매출은 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매출의 질과 향후 성장 가능성이다. 루이비통과 크리스찬 디올 등이 포함된 패션·가죽제품 부문의 상반기 매출은 오히려 1% 감소했다. 2분기에 1% 증가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룹 전체의 성장률을 밑돌았다.

투자자들은 명품 시장에 등을 돌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일 유럽 명품기업 주식이 일제히 하락한 소식을 전하며, 명품 소비 회복에 대한 투자자들의 확신이 약해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분석에서도 3분기 명품업계 수요가 전 분기보다 약 3%포인트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수요가 약해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수요 둔화 요인으로는 경기 불안과 함께 가파른 가격 인상이 꼽히고 있다. 그동안 명품업계의 성장 동력은 가격 정책이었다. 루이비통 또한 매년 가격을 인상해왔다. 루이비통의 대표 모델인 ‘네버풀 MM’은 2019년 유럽에서 990유로(약 158만원)에 판매됐지만, 올해 1550유로(약 247만원)로 올랐다. 7년 만에 57% 오른 셈이다.

가격이 오르는 동안 명품업계의 매출도 함께 성장했다. 문제는 성장의 상당 부분이 판매량 증가보다 가격 인상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2019~2023년 명품 산업의 성장 가운데 80% 이상이 가격 인상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 명품 시장은 연평균 약 5% 성장했지만, 제품이 더 많이 팔린 것보다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판매한 효과가 훨씬 컸다.

맥킨지는 더 이상 가격 인상이 예전처럼 성장의 동력이 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특히 최상위 부유층이 아닌 일반 소비자 가운데 명품을 구매해오던 사람들이 높아진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구매를 미루거나 아예 명품 소비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맥킨지의 시니어 파트너 제마 다우리는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명품업계가 ‘재조정’의 시기에 들어섰다”며“ 반복된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와 명품 브랜드 사이에 ‘신뢰의 균열’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명품 가격이 오른 만큼 제품의 품질, 창의성,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에서도 그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높아진 가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지속적인 가격 인상으로 명품 시장에서 이탈한 소비자가 약 6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고전하고 있는 고가 브랜드는 루이비통만이 아니다. 구찌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27억5700만유로(약 4조3900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9% 감소했다. 로이터는 구찌의 최근 3년간 매출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전하면서 공격적인 가격 인상과 변화한 소비자 취향이 일부 고객을 멀어지게 했다고 분석했다.

명품 가방처럼 수천달러를 한꺼번에 써야 하는 상품의 소비가 주춤한 반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화장품이나 향수에는 소비가 이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작은 사치’다. 최근 프랑스 증시에서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시가총액이 LVMH를 넘어선 것도 이런 소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의 애널리스트 닉 앤더슨은 “고가의 명품을 살 여력이 줄어든 소비자들이 립스틱처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상품으로 만족을 얻으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최상위 부유층을 제외하면 명품 수요가 구조적으로 약해지고 있으며, 중국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우려 등도 명품 소비를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명품 담당 애널리스트 루카 솔카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명품 대형 브랜드들이 소비자층의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상품 구성을 보다 낮은 가격대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구찌는 지난달 새 ‘메르카토’ 가방 가격을 기존 가방 평균 가격보다 약 27% 낮은 2000달러 안팎으로 책정했다.

그렇다면 가격만 조정한다고 명품 소비가 살아날까. 맥킨지 전 시니어 파트너이자 패션산업 싱크탱크 패션사이트 설립자인 아킴 베르크는 지금의 명품 시장을 ‘가격의 문제’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많은 브랜드가 품질 개선보다 가격을 더 빠르게 올렸다”며 “가격과 품질,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 사이에 간극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가파른 가격 인상에 비해 제품 품질, 장인정신, 소재, 내구성 등이 소비자가 납득할 만큼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명품 공급망에서 값싼 중국계 하청업체가 생산에 동원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명품이 내세워온 장인정신과 품질에 대한 신뢰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베르크는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내가 명품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과연 명품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기 시작했다”며 “소비자가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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