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내가 '제인 도'입니다"…'익명'의 피해자를 위한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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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2018년 9월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장. 당시 연방대법관 지명자였던 브렛 캐버노의 고교 시절 성폭력 미수 의혹을 제기한 여성 크리스틴 포드가 증언대에 섰다.
"나는 원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다. 나는 겁에 질려 있다."
약 40년 전의 일을 꺼내든 여성의 목소리가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자신을 방에 가두고 성폭행하려 했던 캐버노와 그의 친구가 터뜨렸던 웃음이 "해마(뇌 부위)에 깊이 각인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영상을 지켜봤던 기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가던 포드의 모습을 기억한다. 여전히 상처로 고통받는 피해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공개 증언을 선택한 순간부터 그의 기억과 진실성, 사생활이 세상의 검증대에 올랐다. 캐버노는 인준을 통과해 대법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미투'(MeToo) 운동이 세상을 흔들었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비슷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피해자의 말보다 피해자의 신상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가. 가해 행위의 책임을 묻는 일과 별개로 피해자의 진실성부터 의심하는 일이 반복되는가.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최근 팟캐스트에서 '면책의 시대'(Age of Impunity)라는 표현을 썼다.
미투 운동이 한때 '책임을 묻는 시대'를 열었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과도함이 지금의 면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책임을 묻는 일이 지나쳤다는 이유로 책임 자체를 묻지 않는 쪽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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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이 겹쳐 보이는 사건이 최근 코넬대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력 사건이다.
사건의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인 가운데 피해자는 법적 가명인 '제인 도'(Jane Doe)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이 피해자의 신원을 찾겠다고 공공연하게 나섰다.
제인 도는 미국 언론과 법원이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이름이다. 말하자면 제인 도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사건이 회자하자 미국의 정치평론가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마이클 트레이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코넬대 '제인 도'의 신원을 찾아내겠다고 나섰다. 이름과 신상 정보를 '보도'하겠다며,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100% 허용'된다고도 주장했다.
피해자의 소송이 동료 7명을 집단 강간범으로 지목해 망신을 줬다며 피해자 측 주장의 '진실성'을 평가하자고도 했다.
그러자 온라인 여기저기에 무수한 제인 도가 나타났다.
"헤이 마이크, 여기, 내가 제인 도다", "더 찾아볼 필요도 없다. 바로 아미 밴더풀(이용자 이름), 내가 바로 그 제인 도다", "그녀도 제인 도, 나도 제인 도, 당신도 제인 도, 모두가 제인 도다."
넥타이를 맨 남성도, 성폭력 경험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도 이름을 보탰다. 한 사람의 신원을 찾아내려는 움직임에 맞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세운 것이다.
처음에는 인터넷 특유의 위트처럼 보였지만,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나는 27살에 데이트 성폭력을 당했다. 30년 넘게 마약 중독자였다. …수치심, 고통,후회,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대신하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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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연합뉴스]
이러한 이야기들은 X에서, 인스타그램에서, 틱톡에서 '#내가 제인 도다'(#IAmJaneDoe)로 묶여 온라인에 번지고 있다.
미투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며 서로의 상처를 연결했다면, 이번에는 한 사람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서로의 이름을 내놓았다. 악의적인 신상 털기 움직임을 무력화하는 '디지털 방패'가 된 것이다.
사건을 둘러싼 책임 추궁도 다시 시작됐다. 뉴욕주지사는 주 검찰총장을 특별검사로 임명해 사건을 다시 수사하도록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현재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캠퍼스에서 배척당하는 등 사회적 심판도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피고인 가운데 한국인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내에서도 그를 향한 비난과 신원 추적 움직임 역시 거세다.
이 사건은 언론이 성폭력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하는 지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가해 학생들이 주고받았다는 외설적인 메시지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독자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일까, 반대로 사건을 둘러싼 '불편한' 장면들을 지우고 나면 무엇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책임을 묻는 보도와 대중의 분노를 키우는 보도 사이의 경계는 어디일까.
뉴스는 사건이 일어난 순간을 좇지만, 피해자의 삶은 뉴스가 끝난 뒤에도 계속된다. 몇 년이나 홀로 고통을 견뎌야 했던 피해자의 시간도, 2차 가해의 공포 속에서 입을 다물어야 했던 수많은 '제인 도'들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nomad@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04일 07시07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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