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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8, 2026

[음식의 미래]냉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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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때 서울 남대문의 한 냉면집을 찾았다가 놀랐다. 대기팀만 무려 96팀, 예상 대기시간은 1시간30분이었다. 연휴 탓에 다른 대안이 없어 마냥 기다리는데 대기자 가운데 젊은층이 많아 전통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뿌듯했다. 그런 뿌듯함 덕분에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냉면의 역사는 길다. 한반도의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는 밀 재배가 어려웠다. 밀을 대신해 메밀, 차조, 녹두로 국수를 만들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는 고려시대부터 이미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평안도는 서늘한 기후로 메밀을 키우기 적합했고 이 지역 사람들은 가을철 수확한 메밀로 국수를 뽑아 차갑게 말아 먹었다.

국경지대였던 평안도 지역은 반란과 전쟁이 잦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지역은 “성정이 거칠다”는 편견에 시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별받던 이 지역의 음식인 냉면을 조선의 집권 세력인 사대부는 물론 왕까지 즐겼다. 1910년 조선이 국운을 다해 궁에서 나온 숙수들이 차린 조선 요릿집에서 냉면은 신선로와 함께 간판 메뉴였다. “왕도 즐겨 먹었다”는 문구를 앞세워 냉면은 일제강점기에 빠르게 대중화됐다. 20세기 초 얼음 공장이 생기면서 냉면은 겨울이 아니라 배달해 먹는 여름철의 별미가 됐다. 베타버전에서 대중 음식인 ‘냉면 1.0’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에 한국전쟁으로 디아스포라의 서사가 추가됐다. 냉면은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참혹한 슬픔을 상징하는 실향민의 음식이었다. 종전 후에는 실향민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뿐 아니라 냉면은 자신의 후손은 물론 고향이 이북이 아닌 사람에게도 한반도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포스트-메모리의 매개가 됐다.

냉면이 마니아를 양산하는 미식이 된 것은 단순히 맛만이 아니다. 냉면은 슬프지만 탄탄한 서사로 남과 북을, 세대와 세대를 연결한다. 연결의 미학은 혀뿐 아니라 머리를 자극한다. 냉면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런 마력은 실향민뿐 아니라 MZ세대까지 냉면집 앞에서 긴 줄을 서게 만들었다. 이게 냉면 2.0이다.

지금은 냉면 3.0 시대다. 실향민과 실향민 2세, 3세들이 아니라 남쪽 요리사들이 독학으로 냉면을 공부하고 만든다. 슬픔과 설움으로 슴슴해진 서북 음식을 산업화된 이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추석 연휴에 간 곳도 남한 출신 셰프의 냉면집이었다.

1시간40분을 기다려 받은 냉면은 순면 100%였다. 수육은 앞다리가 아니라 항정살이었다. 메밀 함량을 높이고 단가가 높은 특수 부위로 고급화를 꾀했다. 실내 인테리어, 플레이팅, 접객 태도도 세련됐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느낌이었다. 일본 라멘처럼 고기와 메밀 함량 같은 본질을 파고든 점도 칭찬할 만하다.

그렇지만 세련된 인테리어와 높은 메밀 함량만으로는 부족하다. 초밥의 경계를 확장한 캘리포니아롤처럼 더 파격적이어야 한다. 이제 냉면이 실향민의 음식, 평안도 음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때다. 파스타는 이탈리아가 원조이듯이 냉면은 한국이 원조다. 파스타에 케첩이나 크림을 넣어도 파스타이듯이 냉면에 뭘 넣어도 냉면은 이미 냉면이다. 몸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패기 넘치는 냉면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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