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은 여성의 소소한 취미? 저항이자 해방 그리고 치유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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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국내에서 2030 여성을 중심으로 ‘뜨개 열풍’이 일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도 혼자 할 수 있는 취미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영향이었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난 뒤로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취미로서는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여성과 관련된 것이 대개 그렇듯 그간 뜨개 열풍 역시 그 안에서 논란 아닌 논란을 낳기도 했다. ‘뜨개인’을 겨냥한 공간이나 상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됐다는 ‘핑크 택스’ 주장이나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취미를 향유하는 것에 대한 설왕설래 등이 그것이다.
뜨개가 열풍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는 동안 뜨개질(직조)의 역사와 의미, 가능성을 고민한 이들이 없었을 리 없다. 고민들을 날실과 씨실 엮듯 모은 책들이 최근 국내에 출간됐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돌고래),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았다’(유유) 등이다. ‘실을 잇는…’은 2025년 미국 여성이, ‘어떤 뜨개도…’는 2020년 이탈리아 여성이 썼다. 가수 출신 배우 김재경도 ‘뜨개질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몽스북)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펴냈다.
현대에도 뜨개질이 여성의 취미로 간주되듯 직조는 이집트, 페루, 알래스카 등 여러 문명에서 오랜 기간 여성의 일이었다. 자연에서 실을 뽑아내고, 이 실로 몸을 감싸줄 면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동시에, 거주 공간 안에서 돌봄과 병행하기에 적절한 일이었다. 계급적으로는 ‘노동 계급’의 일이기도 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에는 그 결과물을 풀어버린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이타카섬의 왕비였지만, 일반적으로 직조는 노동 계급 여성에게 속해 있었다. 공예보다 ‘회화’의 가치를 높이 샀던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도 직물 노동의 가치와 예술성이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16세기 말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뜨개로 만들어진 의복이 ‘고급’으로 취급받기 시작했지만 이에 따른 수익은 새로운 엘리트층(상인)에게 귀속되었고, 뜨개는 대체로 “여성들이 수행했던 노동 계급의 공예”라는 지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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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뜨개인이기도 한 저자들이 공통으로 주목한 것은 직조가 가진 힘이다. 직조는 무엇보다 노동 계급 여성들에게 경제적 힘을 주는 수단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전통 직물 ‘바드말’이 생필품과의 교환은 물론이고 세금·십일조 납부도 가능한 사실상의 법정 통화 역할을 했고, 미국 서부 개척민 여성들도 뜨개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벌었다고 한다. 두권의 책 모두 서양의 사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한반도에서도 조선의 여자들이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했고 현대에 와서도 많은 여성이 섬유 산업에 종사하며 돈을 벌었을 뿐 아니라 노동 운동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집안에서 돌봄과 결부됐던 직조는 역설적으로 여성들 사이를 잇고, 다시 여성을 세상과 연결하는 매개가 됐다. 프랑스 혁명기 하층 계급 여성들은 단두대 앞에서 자리를 잡고 뜨개질을 했고(이들은 ‘뜨개질하는 여자’라는 뜻의 ‘트리코퇴즈’로 불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 저항군은 노년 여성들을 모아 독일군의 동향을 살피게 하고 확보한 정보를 편물에 삽입해 전달토록 했다. 뜨개질하는 여자와 스파이가 주는 괴리감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저항 도구로서의 뜨개는 ‘현재진행형’이다. 1970년대 칠레 여성들은 군부 독재 하의 현실을 천에 담아냈고(결과물은 ‘아르피예라’로 불리며 하층 계급의 수입원 역할도 했다), 2017년 미국 워싱턴에서는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트럼프의 계획에 맞서 이민자와 난민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웰컴 블랭킷(환영 담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팔레스타인의 전통 자수 ‘타트리즈’를 가르치는 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는 자수로 눈을 돌렸다. 소총을 들고 싸울 수 없으니 바늘을 들고 싸우겠다는 심정으로.” 국내에서도 탄핵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내란수괴 처벌’ 같은 문구가 담긴 뜨개 물품을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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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직물 노동을 “해방의 도구”로 이용하는 동시에 “억압의 도구”로 보고 거리를 두기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대표되는 제1물결 페미니즘부터 교차성과 퀴어이론 등을 포섭한 제3물결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직조는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여성성을 잃어버린 괴물 같은 여자들’이라는 비난에 맞서 뜨개질과 바느질을 했고, 공예행동주의(크래프티비즘)는 이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여성이 아닌 남성이, 집 안이 아닌 밖에서 뜨개질하는 모습 역시 익숙해지고 있는 듯하다. 책들은 이 외에도 뜨개질이 어떻게 물리학과 수학을 이해하는 주요한 도구가 되는지에 관해서도 소개한다.
무엇보다 “직물 작업은 통합과 해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과정”이다. 뜨개질이 밖으로는 연결과 저항이면서 안으로는 치유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떤 뜨개도 개인적이지 않았다’의 저자 역시 예순이 넘어 경제적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뜨개질을 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바로잡지 않으면 결과물이 점점 산으로 간다는 점에서도, 다만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이미 뜬 것을 풀어낼 용기”만 있다면 언제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뜨개는 삶과 닮아 있다. 한국 여성들의 손에서 자투리 천이 ‘조각보’로 새 생명을 얻었듯, 풀려버린 실은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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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와 여성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를 그저 읽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겠다. ‘실을 잇는 여자의 손’에 실린 16세기 한 스위스 의사의 말을 옮긴다. “경험으로 체득되는 지식을 어떻게 종이로 배운단 말인가? 종이는 사람을 게으르고 생기 없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 그러므로 하루라도 빨리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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