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과 송전탑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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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 | 작가·‘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저자
버스 안이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귀농귀촌여성정책포럼에 참여하러 가는 길. 네팔에서 대홍수가 났다. 속보였다. 빙하가 녹았기 때문이라 했다. 올 것이 왔다는 두려움. 그 속에 휩쓸린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분노가 들끓었다. 네팔은 아니지. 기후 재난은 산업화와 개발주의 때문이다. 산업화와 개발주의에 동참하지 않았거나 뒤늦게 합류한 나라들은 그 책임이 없거나 가볍다. 그럼에도 재앙은 언제나 이들 나라에서 더 심각하다. 그리고 기후 재난이 마치 그들의 책임인 양 소비되곤 한다. 그날 군의원이 보낸 온 문자 내용도 그랬다. 네팔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 지역은 자연환경을 잘 지키자는 내용이었다. 구조가 만든 고통은 약자에게 아래로 흘러내리고 책임도 떠넘겨진다.
집을 나서며 언제나처럼 냉장고를 제외한 전원을 차단한다. 질식할 것 같은 습기와 무더위에 주변에서는 마지막으로 버티던 친구들조차 에어컨을 들였다고 했다. 이미 올해 여름은 심상치 않았다. 유럽은 폭염과 산불로, 미국은 그랜드캐니언 등에서 돌발 홍수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홍수와 태풍, 강진이 이어지는 재난이 일상화되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낮 기온 38도. 본격적인 기후 재난이 시작되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는 것도. 그 속에서 개인일 뿐인 내가 하는 일상 속 작은 실천은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름 내내 묵묵히 소창 행주와 수건을 만들고, 삼베로 수세미를 뜨고, 버려지는 청바지로 업사이클링 손바느질을 이어갔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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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과 9월. 중소도시들에서 책 문화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청바지 업사이클링 북커버와 북파우치, 책갈피, 삼베 수세미, 소창 행주와 수건 등을 가지고 참여했다. 작은 실천에 동참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내내 보이는 모든 곳에는 송전탑이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논과 밭 위로, 산과 들 위에는 송전탑과 이를 잇는 고압 전선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차들과 사람들은 그 아래와 옆을 지난다.
경기 용인에 최첨단 반도체 산업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윤석열 정부에 이어 이재명 정부에서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용수 공급을 위한 공사, 배후 도시 공공주택 개발, 국도 45호선 확장, 격자형 고속도로망, 철도망 연계 구축이 추진 중이다. 대통령 얼굴이 바뀌고 정당이 바뀌어도 한국은 산업-발전주의와 개발주의를 멈춘 적이 없다. 반도체 산업이 호황이라지만 자본 집약적 투자와 자동화로 인해 이미 고용 효과도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산업은 우리에게 왜 필요하다는 것일까? 이대로 산업-발전주의와 개발주의를 이어가다 지구에서 우주로 탈출하면 그만일까? 그렇게 남겨진 지구와 사람들은 ‘불가피한 일부 작은 희생’일 뿐으로 ‘기록’하면 되는 것일까?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 한국은 다시 한번 ‘대도약’을 하기 위해 용인으로 자본과 에너지를 흡수하는 중이다. 3855㎞, 54개 지역에 지어질 초고압 송전선로. 이미 포화상태인 고압 전선망과 송전탑을 더 만들어 용인까지 끌어가는 것에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미 쪼글쪼글해지다 못해 사라져 갈 지경인 농어촌은 관심 밖인 것 같다. 하긴 피해자에 공감하는 가해자가 없듯이 식민지를 걱정하는 제국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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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여름, 그 뜨거운 태양 아래, 한달이나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걸어간 전국대행진 참여자들이 있다. 그리고 ‘9·19 기후정의 대행진’에서도 폭주를 멈추라는 외침이 있다. 나는 그들을 기억하며 마음에 남고 함께할 것을 찾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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