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 평가’ 도입…국립암센터 변화시킨 ‘긍정 리더십’ [건강한겨레]
조직 문화 개선 위해 ‘상급자 평가’ 도입
지난해 155억원 절감하고 후원금도 늘려
복지부 기관 평가 1년 만에 5위→1위
“지역 암 치료 역량도 함께 강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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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난제 앞에서는 으레 비관이 낙관을 앞선다. 만성적인 재정난과 인력 이탈이 반복되는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다. 변화에 대한 기대마저 체념으로 바뀌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긍정의 리더십’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오는 11월 취임 2주년을 맞는 양한광 국립암센터 원장은 ‘안 되는 이유’보다 ‘바꿀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지난 7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그는 조직의 어려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해결 가능한 문제부터 손대고, 그 성과를 다른 영역으로 넓혀가는 방식을 설명했다.
국립암센터는 올해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으며 지난해 종합 5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감사원 자체 감사활동 심사에서도 공공병원 16곳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양 원장은 변화의 동력으로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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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성과가 나타나면서 우리도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원장 혼자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원장도 평가받는다…조직의 변화를 이끈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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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원장이 취임 직후 손댄 것은 조직 운영 방식이었다. 2024년 12월 반부패·청렴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원장 주관으로 23차례 회의를 열었다 . 직원이 상급자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제도 및 경영리더십 평가를 도입했고 , 원장 자신도 평가 대상에 포함했다 .
“상급자는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해도 부하 직원은 부당한 압박을 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경영진의 판단과 직원들의 경험 사이에 간극은 없는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지출 관행에도 손을 댔다. 무정전 전원장치 배터리 교체에 책정된 6억6천만원을 재검토해 3억8천만원으로 낮췄다. 양 원장은 절감한 2억8천만원을 담당 직원의 성과로 소개했다. 다른 부서들도 비용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기관이 밝힌 지난해 절감액은 155억원 이상이다. 후원금은 2024년 17억3천만원에서 지난해 34억5천만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4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 또한 노후 의료장비 교체를 위한 국고 지원도 지난해 19 억원에서 올해 28 억 4천 만원으로 확대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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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를 넘어, 국가의 암을 관리하는 기관
물론 국립암센터는 경영 성적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특수한 기관이다. 암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면서 국가 암 관리 정책을 총괄·지원하는 중앙기관이기 때문이다. 2000년 설립돼 이듬해 개원한 국립암센터는 병원과 연구소, 국가암관리사업본부, 국제암대학원대학교를 갖추고 있다. 암 통계 생산부터 예방·검진 정책, 새로운 치료법의 검증과 전문인력 양성까지 맡는다. 개별 환자의 치료를 넘어 국가 전체의 암 관리 수준을 높이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설립 초기부터 내세운 ‘세계 최고의 암센터’라는 비전도 이러한 역할과 맞닿아 있다. 양 원장은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와 안전성을 임상연구로 검증하고, 그 성과를 의료 현장에 확산시키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암센터는 이를 위해 국가 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연구를 확대하고, 전국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임상연구 네트워크도 추진하고 있다.
수익성만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의료를 책임지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희귀·난치암이다. 환자는 적지만 전문인력과 고가 장비가 필요하다. 양 원장에 따르면 국립암센터는 이러한 공공적 진료에서 연간 약 18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육종암센터를 열고 올해 희귀·육종암 전용병동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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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모든 병원에서 희귀암을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적인 치료 역량을 일부 기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적 역할을 지속할 수 있는 재정 기반이다. 국립암센터는 고난도 암 진료를 수행하면서도 암 전문기관이라는 특성상 상급종합병원 지정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적절한 보상을 받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립암센터 특성화 기능 보상 시범사업’을 도입했다.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연간 92억~99억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양 원장은 취임 이후 정부에 별도 보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해왔다고 밝혔다.
이처럼 별도의 보상체계가 마련된 것은 진전이지만, 공공적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수다.
“지역 병원에 갈 이유부터 만들어야”
국가 암 관리 중앙기관으로서 국립암센터가 마주한 또 다른 과제는 지역 의료 격차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암환자 가운데 서울 거주자는 18.4%였지만, 서울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는 47.9%에 달했다. 반면 전체 암환자는 늘고 있지만 전국 13 개 지역 암센터의 10 대 암 수술 건수는 2021 년 1 만 9566 건에서 지난해 1 만 4078 건으로 28% 감소했다 .
양 원장은 국립암센터 전문 의료진과 함께 지역암센터 현장들을 일일이 방문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병원인데도 항암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한 곳이 있었다. 그가 제안한 해법은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키우기보다 각 기관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부터 육성하자는 것이다. “어려운 병원이라도 잘하는 분야는 한두 개씩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야부터 살려야죠.” 위암이나 유방암 등 각 기관의 강점을 중심으로 진료 역량을 높이고, 국립암센터가 공동연구와 의료진 교류를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무엇보다 환자가 지역 병원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냥 지역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고 되겠습니까. 수술 후 합병증이나 사망률, 5년 생존율 같은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지역 병원 이용을 권하기보다 환자가 치료 성과를 확인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립암센터는 이를 위해 국가적 자원과 연구 역량을 연결하는 ‘조력자’ 역할을 맡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환자가 서울로 향하는 또 다른 이유로 돌봄의 부재를 짚었다. 지방의 부모가 암에 걸리면 서울에 사는 자녀가 올라오라고 한다. 진료뿐 아니라 검사와 통원을 도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양 원장은 의료사회복지사의 전문 지원을 결합해 지역 치료의 편의성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양 원장은 “치료 역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한 뒤 지역의 생활 여건에 맞춘 돌봄을 더한다면 환자가 지역 병원을 선택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립암센터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암 경험자의 병원 동행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돌봄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를 이어가기 위한 핵심 과제는 결국 의료인력 확보다. 인터뷰 말미에 양 원장은 공공기관 총인건비 제한으로 민간 대형병원과의 보수 격차가 벌어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선행돼야 긍정적 변화의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간 국립암센터는 조직 운영과 경영에서 분명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공공 진료의 기반을 다지고 지역 암환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다. 양 원장 역시 이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현장에서 바꿀 수 있는 지점부터 실행에 옮기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문제를 풀어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공공의료와 지역의료의 회복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난제다. 비관에 머무르기보다 가능성을 찾고 행동하는 낙관으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낸 양 원장의 리더십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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