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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August 16, 2026

내가 살기 위해 너를 해쳐야 하는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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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던져 남을 지키는 용기, 모두가 질문 없이 폭력적인 질서를 따르고자 할 때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먼저 죽은 수련이 남긴 선물이었다. 배급사 제공
나를 던져 남을 지키는 용기, 모두가 질문 없이 폭력적인 질서를 따르고자 할 때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먼저 죽은 수련이 남긴 선물이었다. 배급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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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H열 15번

[이 글은 ‘그림자 아이’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림자 아이’는 ‘유령 이야기’다. 유령 이야기와 귀신 이야기가 다르다. 둘 사이에는 ‘살목지’와 ‘그림자 아이’만큼의 거리가 놓여 있다. 귀신은 원한에 사로잡혀 타인을 해하는 것에 몰두한다면, 유령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세계를 쓸쓸하게 부유한다. 귀신은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유령은 수동성에 정박되어 있다. 겁나게 빠른 귀신은 있어도, 그렇게 기민하게 움직이는 유령은 없다. 물론 이건 나의 자의적인 구분이다. 그래도 이 영화가 유령 같은 유령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묘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기어코 전달하기 위해 유령처럼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매혹적인 비밀을 품은 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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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박소이)과 수련(유나)은 둘도 없이 가까운 자매다. 어느 날, 어둡고 음흉하지만 쓸쓸한 존재인 ‘그림자’가 나타나 둘에게 몸 하나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둘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만들겠다며. 언니 수련은 집 옥상에서 ‘그림자’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지고, 수안은 그런 언니를 붙잡으려다 함께 떨어진다.

그로부터 3년 후, 수안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깊은 상실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수안. 그러나 곧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수련과 똑같이 생긴 아이 재인(유나)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수안은 언니가 떠난, 이제는 버려진 낡은 집으로 재인을 데려간다. 그러면 ‘그림자’가 수련을 돌려줄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하지만 ‘그림자’는 수안의 생각과는 달리 다시 또 둘 중 한 사람의 몸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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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매의 엄마 금옥(임수정)은 첫째에 이어 둘째 수안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결국 수안을 지키기 위해 재인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금옥은 재인을 ‘그림자’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 모든 기이한 이야기의 열쇠는 금옥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그림자’의 저주다. 집안의 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딸이 열네살이 되는 해 그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금옥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고, 그의 아버지가 그랬으며, 또 그 윗대의 아버지 역시 그랬던 것처럼, 금옥을 닮은 아이를 땅에 묻었다. 그리고 이제 금옥이 재인을 땅에 묻으려 한다. 저주는 대에 대를 이어 아버지의 입을 타고 어머니의 몸을 통해 전해지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른 아이를 해하는 끔찍한 일은 부모 된 도리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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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맑은 유리알 같았던 금옥의 얼굴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면서 신뢰를 쌓아온 심리상담가이자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던 어머니였던 금옥은 “아줌마랑 같이 있으니까 무섭지 않지?”라고 서늘하게 묻는 살인자의 눈빛을 반짝인다. 이는 유은정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꾸준히 다루어졌던 테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괴리, 친밀하고 다정한 얼굴 뒤에 숨겨져 있는 신뢰하던 사람의 또 다른 면모.

하지만 이렇듯 한 인물 안에 서로 다른 얼굴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그 개인이 본래부터 사악한 존재였기 때문은 아니다. 금옥과 그의 아버지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그림자’의 저주는 주어진 룰에 질문을 던지지 않는 관습적인 신념의 세계가 만들어놓은 덫과 같다. 금옥의 다른 얼굴은 바로 그 덫과 금옥이 맞물리면서 일어난 화학 작용으로 인해 그의 내면을 뚫고 튀어나온 것이다.

영화는 저주에서 머물지 않고, 그 저주가 깨지는 순간으로 나아가면서 누군가를 해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한다. 이 기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선택)은 수련의 죽음에서부터 싹을 틔웠다. 수련이 ‘그림자’에게 자신의 몸을 바친 건, 자기 대신 희생할 아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아이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도플갱어를 해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수련은 수안에게 말한다. “용기가 필요해.” 나를 던져 남을 지키는 용기, 모두가 질문 없이 폭력적인 질서를 따르고자 할 때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수련이 남긴 선물이었다.

수련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한번도 본 적이 없잖아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무서우니까 그러시는 거잖아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제 눈으로 보고 싶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이 보지도 못한 것을 ‘사실’이라 믿어버리고 행동을 개시한다.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 할아버지의 대사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 말은, 재인을 묻으려는 자신을 막아서는 수안에게 금옥이 쏟아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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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유령 이야기 혹은 ‘잔혹 동화’는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믿음을 깨뜨리고, 오랫동안 질문하지 않았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해쳐야 한다는 저주의 문법 앞에서, 수련과 수안, 그리고 재인은 다른 길을 상상하고 그 길을 손을 잡고 ‘함께’ 간다. 그렇게 그 유령의 시간을 통해 저주보다 오래 살아남을 ‘함께’라는 상상력의 가능성을 찬란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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