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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30, 2026

영국 최고 추리작가가 쓴 과학수사의 결정적 순간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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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 l 발 맥더미드 지음, 조진경 옮김, 문예춘추사(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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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영국, 친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학대를 당하던 14살 소녀가 웹캠 녹화 영상을 가지고 경찰서를 찾아왔다. 영상에는 한밤중에 웬 남성이 소녀의 침대로 와서 추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의 얼굴은 찍히지 않아서, 친아버지인지 식별할 증거로는 부족했다. 런던경찰청 사진부장은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에게 조언을 구했다.

블랙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야간 적외선 모드로 찍힌 가해자의 팔뚝에 두드러진 정맥에 주목했다. 혈관은 심장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마다 차이가 커지기 때문에, 손과 팔뚝 정맥은 몸에서 가장 개인적인 패턴을 띤다. 블랙의 제안에 따라 경찰은 소녀의 아버지 오른팔을 촬영해 보았다. 그 혈관은 영상 속 혈관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것은 정맥 패턴이 과학수사 증거로서 법정에 제출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결국에는 증거 부족으로 유죄 평결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블랙은 이 일을 계기로 데이터를 모으고 기법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2009년, 그는 용의자의 손 정맥과 주근깨 패턴을 근거로 소아성애자 범인의 신원을 특정하고 자백을 끌어내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법과학이 또 하나의 영역을 개척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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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에 소개된 이 사례는 오늘날의 법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19세기 해부학과 병리학의 발전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발달해 온 이백년 역사의 법과학은 이제 혈액형으로 용의자를 추리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지문에 묻은 땀 속 작디작은 디엔에이(DNA) 조각만으로도 범인을 지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체에 모이는 곤충을 통해 사망 시점을 역산하는 법의곤충학, 사망 원인을 밝히는 법의병리학과 법의독물학, 유골로 신원을 밝히는 법의인류학과 얼굴 복원 작업, 범죄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단서를 얻는 법심리학 등등 분야도 다양하다. 현대에 특히 중요해진 것은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기기 속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디지털 포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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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드라마의 유행으로 모두가 법과학에 익숙해진 오늘날이지만 그런 만큼 오해도 많다. ‘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에서 한 법과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남자가 칼에 찔려서 앉은 채로 죽었던 현장에 갔었습니다. 선임수사관이 제게 말하더군요. ‘아, 이제 상처 가장자리에서 금속 분석을 해서 그 칼이 맞는지 확인하겠네요?’ 저는 대답했죠. ‘시신에 칼이 꽂혀 있으니 그게 우선은 아닌 것 같네요.’” 법과학에 대한 과장된 기대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수사의 한 도구일 뿐이라는 점, 나름의 한계와 타협점이 있다는 점을 잊게 만든다.

이 책은 법과학의 전 분야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훑어보기에 좋은 자료다. 여러 기법을 개발한 개척자들의 이야기와 그 기법이 적용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버무렸다. 이 책만의 특징이라면 영국에서 각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담겼다는 점인데, 이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영국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 중 한명인 발 맥더미드이기에 가능했을 듯하다.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로 유명한 맥더미드는 영국추리작가협회의 평생 공로상을 받은 거장. 죽음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과정을 매혹적인 소설로 써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들려주는 법과학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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