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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11, 2026

“핵무기 사라졌단 말 듣고 숨 거두고 싶다”…야구 전설이자 반핵 전도사였던 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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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별세한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일본 이름 하리모토 이사오)씨가 현역 시절 활약하던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 9일 별세한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일본 이름 하리모토 이사오)씨가 현역 시절 활약하던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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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교에 다닐 때 원폭 켈로이드(피부 위로 솟은 흉터)가 있는 선배들이 있었어요. 어떤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전염되니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죠.”

지난 9일 별세한 ‘일본프로야구(NPB)의 전설’ 고 장훈(86, 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씨가 생전 한 일본 방송사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일본 리그 유일의 3천안타 주인공인 그가 다섯살 때 원자폭탄에 피폭된 경험을 소개하면서 한 발언이다. 피폭자에 대한 차별을 온몸으로 겪은 그는 예순이 되어서야 자신의 피폭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1940년 태어난 그는 재일동포 2세로 일본 프로야구 2572경기에서 역대 최다인 3085안타를 쳤다. 통산 타율 0.319, 504홈런, 1676타점을 기록한 ‘전설’로 불린다. 입단 첫해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선수 생활 동안 타격왕을 7차례 했다. 1990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인 ‘야구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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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전설인 그는 5살 때이던 1945년 제2차 대전 말기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피폭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는 생전 자신을 ‘원폭 수첩(일본 정부가 피폭자 지원을 위해 발급하는 건강수첩)을 가진 유일한 프로야구 선수’라고 표현했다. 실제 1945년 8월6일 오전 8시15분께, 미군이 ‘에놀라 게이’라고 이름붙인 B-29 폭격기에서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히로시마에 떨어뜨렸다. 폭심지 주변 지표면 온도가 섭씨 3천도에 이르렀고 그해 말까지 원폭 관련 희생자가 14만명에 이르렀다. 당시 투하 지점이었던 히로시마 중심부 오타강 아이오이교는 장씨의 집으로부터 동쪽으로 2㎞가량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때 참상을 일본 티비에스(TBS)에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과 놀려고 집의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말 그대로 ‘피카’ 하고 빛이 번쩍이며 ‘쾅’하고 터졌어요. 히로시마에서 말하는 ‘피카돈’입니다. 비명 소리, 고통스러웠겠죠. 제 앞에서 수십 명이 달려가 근처 개울로 뛰어들었습니다.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장씨는 목숨을 건졌지만 폭심지 근처에서 일하던 큰 누나가 사망했다. 그는 집으로 실려온 누나에 대해 “얼굴도 몸도 온몸이 화상으로 타버린 채였다”며 “(포도 알갱이를) 떼어내서 누나의 입가에 대주는 정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아픈 과거를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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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0살 되던 해까지 피폭 사실을 숨기다가 이후 ‘반핵 전도사’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이전까지 원폭 후유증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는 게 싫었고, 어릴 적 주변에서 피폭자들이 차별받는 걸 봤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였지만 ‘어쩌면 나도 곧 원폭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기침을 하거나 속이 이상할 때마다 원폭 후유증을 떠올렸고 그게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전쟁을 모른다”, “원폭이 어디 떨어졌었냐”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실제 피폭을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세대가 마지막인 만큼 (당시 상황을) 반드시 전해야겠다”며 핵 참상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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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장씨가 지난 5일 전화 인터뷰에서 “핵무기를 전 세계에서 없애야만 한다”며 “무기로 서로 죽이는 전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평소처럼 열정 섞인 어조로 거듭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정부가 최근 ‘비핵 3원칙’(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흔들려는 행보를 하는 것과 관련해 “가져서 안 되는 걸 가져서는 안 된다”며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매체와 이전 인터뷰에서 “지구상에서 핵무기가 사라졌다는 한마디를 듣고 숨을 거두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오랜 기간 재일동포에 대한 극심한 차별을 경험하기도 했다. 일본 국립 히로시마원폭사망자추도 평화기념관 누리집에 공개된 체험수기에서 장씨는 “어머니가 ‘조선인을 조롱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등한 인간’이라고 말해주신 뒤부터 (차별하려고) 먼저 싸움을 걸어오면 반드시 상대를 제압해 갚아줬다”며 “먼저 싸움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한국인 친구가 일본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참을 수 없어 ‘도움꾼’으로 상대를 두들겨 팼다”고 밝혔다. 이미 중학생 시절, 시비를 걸어오는 일본인 고등학생뿐아니라 야쿠자들까지 상대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싸움을 계속했다면 야쿠자 혹은 비슷한 존재가 됐을 것”이라며 “악의 길에서 나를 구해준 게 바로 야구였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일본으로 귀화하며 국적을 바꿨다. 그는 2024년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처음 얘기를 하는 건데 몇 년 전 국적을 바꿔 현재는 일본 국적”이라고 밝혔다. 한해 전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한·일 관계에 대해 “저는 일본인이 아닌 재일한국인이고 (한국이) 조국이니까 말씀드리지만 언제까지 일본에 ‘사과하라’, ‘돈을 내라’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냐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조선일보 일본어판의 당시 기사를 보면, 장씨는 “당시는 약육강식의 시대였고 한국이 약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며 “앞으로는 한국도 자존심을 갖고 일본과 대등하게 손을 맞잡고 이웃나라로서 지내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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