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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7, 2026

[최정화의 사소한 세계]소설가 정화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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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8시였다. 지난주에 언니가 치앙마이에서 선물로 사온 밀크티를 마시고 작고 네모난 비닐 포장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한국에서 일하고 쉴 때는 해외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정화씨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여행의 본래 의미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은 고행이고 순례여야 한다고 말이다. 정화씨의 문제는 그거였다. 의미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정화씨는 ‘에레혼’이라는 단어를 읽으면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경고하는 새뮤얼 버틀러의 소설을 떠올렸고, 이미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AI는 삼만원짜리 스무디를 파는 미국의 초고급 슈퍼마켓이라고 대답했다.

글쓰기 대신 다른 일을 찾아야 하나

정화씨는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요가를 따라 한 뒤 노트북을 켰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이 정화씨의 돈벌이였기 때문이다. 습작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해도 한달에 백만원을 벌지 못했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10여년 전보다 고료가 점점 낮아지는 사태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대신 다른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후에는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에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시위가 시작하기도 전에 시청 앞은 경찰이 통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쳐진 도로 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화씨는 한달 전 한 연극배우에게 전화를 걸어 동료 소설가가 쓴 에세이 한 편을 각색해 길거리 공연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었다. 작은 공연을 열 계획이었다. 스피커 소리에 가려져 배우의 목소리는 겨우 들을 수 있었지만 무대도, 조명도, 그래서 쓰레기 없이 땡볕 아래서 진행된 이 작은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한 소설가가 신작 소설을 배송받고 난 뒤, 자신의 책 또한 쓰레기라는 자각으로 고민한다는 줄거리였다. 정화씨는 동료들에게서 종종 그와 비슷한 고민을 들어왔고 자신 또한 같은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난주에는 한 의상디자이너가 티브이에 출연해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어제 들렀던 동네 목욕탕 사장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정화씨는 ‘아파트, 발전소보다 풀꽃과 들개가 중요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시청역에서 경복궁까지 동료 소설가들과 함께 걸었다. 한 소설가가 정화씨에게 플라스틱 병에 든 음료수를 건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최근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었는데 그는 이제 소설을 그만두고 드라마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정화씨조차도 소설보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더 많이 보고 있었다. 정화씨의 가족들과 친구들도 소설이 아닌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하지만 어쩐 일인지 계속 소설을 쓰고 있었다.

정화씨는 한 후배에게 주목받는 신인의 기간이 지나면 곧 외로워지는 시기가 올 것이라 말하면서, 자기 자신 또한 쓰레기와 비슷한 처지, 그러니까 새롭게 등장해 잠깐 알려지고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자(그 신인 소설가들이 자신의 바로 옆에서 걷고 있었다) 쓰레기로 버려졌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회가 끝나고 정화씨는 동료 소설가들과 술을 마셨다. 그들은 최근 의기투합해 쓰레기에 관한 앤솔러지를 출간한 터였다. 몇달 전 퇴사한 동료 소설가가 자신이 하던 일이 온라인에서 쓰레기를 만드는 거였다고 털어놓았다. 정화씨는 종종 자신의 책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곤 했는데, 검색이 많이 나오면 안도했지만 한편으로 내용이 다 비슷비슷한 그 기사와 포스팅들 또한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쓰레기들은 우주로 날아갔을 거였다. 총알의 7배나 되는 속도로 지구 표면을 공전하다가 언젠가 지구로 낙하하겠지. 정화씨는 거주지역에 낙하한 쓰레기 때문에 일어나는 재난에 대한 소설을 곧 출간할 예정이었다. 정화씨는 동료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쓰레기가 아닌가요?’라고 되묻고 싶었다. 잡지에 한 번 실렸다가, 다시 소설책으로, 두 번 종이에 인쇄되었다가 중고 매장에서 종종 발견되는 자신의 책 또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소설 쓰는 일은 쓰레기가 아닌가요?

매콤한 순두부찌개를 입안에 흘려 넣으며 과민성 방광염이지만 어쩌다 한번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방광은 급작스럽게 반응했고, 술집 화장실은 다른 취객이 사용 중이었다. 정화씨는 동료들과 헤어져 오줌을 참으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정화씨의 배낭 안은 오늘 집회에서 받은 전단지로 가득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다른 방식의 삶을 기획하는 새로운 책을, 그러나 또다시 쓰레기가 될 그 책을 상상하면서, 정화씨는 걸었다. 도중에 삼천원짜리 식빵을 하나 샀는데, 그 빵도 역시 비닐 포장돼 있었다. 주인은 식빵이 든 비닐봉지를 또 다른 비닐봉지에 넣어 건넸고, 정화씨는 건네받으면서 그것이 오늘의 마지막 쓰레기라는 데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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