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칩, 자꾸 손 가는 이유…맛 보다 “아그작” 소리 때문이었다
음식을 먹을 때 뇌는 혀에서 전달되는 맛 정보만으로 음식의 특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냄새와 시각, 씹을 때의 촉감, 귀에 들리는 소리까지 여러 감각 정보를 함께 처리한다. 프리픽이미지
과자를 먹을 때 나는 소리가 유독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누군가 ‘아그작’ 과자를 씹는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리가 음식의 맛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과학자들은 감자칩을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조작하는 실험을 통해, 소리만으로도 과자가 더 바삭하고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 교수와 이탈리아 트렌토대의 마시밀리아노 잠피니 연구진은 감자칩을 씹을 때 들리는 소리의 크기와 주파수를 바꾸면 식감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지 실험했다. 연구 결과는 2004년 학술지 ‘저널 오브 센서리 스터디스’에 발표됐다. 논문 제목은 ‘감자칩의 바삭함과 눅눅함에 대한 청각 단서의 영향’이다. 이 연구는 2008년 이그노벨상 영양학상을 받았다. 이그노벨상은 사람들을 웃게 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에 수여하는 상이다.
실험의 핵심은 과자 자체를 바꾸는 대신 씹는 소리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마이크와 헤드폰을 착용하고 감자칩을 앞니로 깨물었다. 마이크가 포착한 소리는 헤드폰을 통해 다시 들려줬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모르는 사이 소리의 전체 음량을 키우거나, 바삭한 식감과 관련된 고주파 영역의 소리를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과자를 먹은 뒤 바삭함과 신선함을 평가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같은 감자칩이라도 씹는 소리를 크게 하거나 고주파 소리를 강조했을 때 더 바삭하고 신선하다고 평가됐다. 반대로 씹는 소리를 줄이거나 고주파 성분을 약하게 하면 과자가 상대적으로 눅눅하고 덜 바삭하게 느껴졌다. 과자의 실제 수분이나 성분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귀로 들은 소리가 입안에서 느끼는 식감에 영향을 준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음식을 먹을 때 뇌는 혀에서 전달되는 맛 정보만으로 음식의 특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냄새와 시각, 씹을 때의 촉감, 귀에 들리는 소리까지 여러 감각 정보를 함께 처리한다. 과자를 깨물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음식이 잘 부서지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바삭한 소리가 선명할수록 갓 만든 과자처럼 신선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스펜스 교수는 음식의 맛과 식감에 청각이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그는 2015년 학술지 ‘플레이버’에 발표한 논문 ‘귀로 먹기: 음식 섭취 소리가 다감각적 풍미 경험의 지각과 즐거움에 미치는 중요성’에서 음식을 먹으며 듣는 소리가 식감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음식의 선호도와 풍미를 판단하는 데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리했다.
소리와 맛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영국의 유명 셰프 헤스턴 블루멘탈이 운영하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더 팻 덕’의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바다의 소리’다. 해변을 연상시키도록 해산물을 담아내고, 조개껍데기 안에 넣은 음악 재생 장치와 이어폰으로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려준다. 손님은 바닷가 소리를 들으며 해산물을 먹는다.
이 메뉴의 아이디어에는 스펜스 교수와 블루멘탈 셰프가 진행한 감각 연구가 영향을 미쳤다. 참가자들에게 굴을 먹으며 바닷소리를 듣게 하거나 농장 닭 소리를 듣게 했더니, 바닷소리를 들은 쪽이 굴을 더 맛있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바닷소리가 굴의 성분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해산물과 바다를 연결하는 청각적 단서가 음식의 풍미를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음식의 맛을 바꾸는 소리는 과자 씹는 소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스펜스 교수는 음악의 음높이와 악기 소리도 단맛이나 쓴맛을 느끼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해왔다. 다만 특정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똑같이 맛을 느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음식의 종류와 실험 조건, 개인의 경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가 실제 맛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맛을 지각하고 평가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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