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도서관의 세렌디피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도서관의 연구자 가브리엘 딘은 어느 날 네 권의 책을 찾으러 서가로 내려갔다. 돌아올 때 그녀의 손에는 열 권이 들려 있었다. 찾던 책 한 권은 펼쳐본 뒤 다시 책꽂이에 꽂아 두었고, 대신 목록에 없던 일곱 권을 집어 들었다. 그중 한 권은 그녀의 연구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 책이었다. 검색을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찾던 책 옆에 그녀의 눈길을 끈 다른 책이 있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발견에는 늘 이런 ‘옆자리’가 있었다. 종이신문을 펼치면 읽으려던 기사 옆에 다른 기사가 놓여 있었다. 사회면을 보다 국제면 사진에 눈길이 멈추고, 경제기사를 읽다 이름도 모르던 필자의 칼럼에 빠져들기도 했다.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프로그램 한 편이 취향을 바꾸기도 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찾으러 갔다가 종종 다른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디지털미디어는 이런 우회를 지워가고 있다. 검색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찾아주고, 추천 알고리즘은 좋아할 만한 것을 미리 골라준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여러 곳을 헤맬 필요조차 없이 질문 하나에 답을 모아 건넨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적게 헤매고도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길을 잃지 않게 되면서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개인화된 화면에도 새로운 것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다만 그 새로움의 상당 부분은 어제의 나로부터 계산된다. 무엇을 보고 어디에 오래 머물고, 무엇을 건너뛰었는지가 다음 화면을 결정한다. 과거의 취향이 미래의 발견에 조용히 울타리를 두르는 셈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찾지 않았던 것에서 뜻밖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을 말한다. 우연 자체를 설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연이란 것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둘 수는 있다. 도서관의 서가 사이가 그렇고, 낯선 도시의 골목이 그렇다. 학교의 복도와 강의실도 때로는 그런 공간이 된다. 공학을 공부하던 학생이 어쩌다 들은 철학 강의에서 평생 품을지 모를 질문을 얻고, 문학을 좋아하던 학생이 데이터 수업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가 생각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처음으로 찾으려 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들이다.
효율만을 생각하면 이런 우회는 불필요해 보인다. 관심에 꼭 맞는 수업, 취향에 맞는 콘텐츠, 질문에 꼭 맞는 답을 곧바로 건네는 편이 빠르다. AI는 그런 길을 더욱 짧게 만들고 있다. 선택은 더 정확해지고 시행착오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길이 지름길일 필요는 없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화면이 점점 나의 과거에 맞춰진 세계가 되어간다면, 삶의 어딘가에는 나에게 맞춰지지 않은 공간들도 필요하다. 관심 없던 책이 옆에 꽂혀 있고, 한 번도 품어보지 않은 질문이 불쑥 말을 거는 곳. 삶의 방향을 바꾸는 발견은 때때로 질문보다 먼저 찾아온다.
가브리엘 딘은 네 권을 찾으러 서가에 내려갔다가 열 권을 들고 돌아왔다. 정작 그녀의 연구를 새로운 길로 데려간 것은 처음부터 찾던 책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정확히 찾아주는 시대에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검색창에만 얽매이지 않을 가능성인지 모른다. 찾던 것 옆에,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세계가 남아 있도록.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