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을 ‘정보’로 길들이는 시대 [세상읽기]

광고

김종대 | 전 정의당 의원
2025년 2월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이 파국으로 끝났다. 닷새 뒤 미 국가지리정보국(NGA)은 미국 정부가 사들인 상업위성 영상에 우크라이나가 접근하는 길마저 막았다. 정보가 친구를 길들이는 채찍이 된 것이다. 그해 7월에는 미 국가정보장실(ODNI)이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 관련 정보를 ‘파이브 아이스’ 동맹국과도 공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달에는 우크라이나에 정보 공유를 다시 끊겠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거부하고 무역·투자 압박을 버텨온 한국이라고 비켜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크라이나와 한국은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표적 정보, 위성 영상, 조기경보까지 전쟁의 신경망이 미국에 연결된 정보 최빈국이었다. 정보가 끊긴 엿새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장거리 타격 계획에 차질을 빚었고, 쿠르스크 전선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광고
한국은 어떤가. 1996년 합참이 ‘군 정보 현대화 계획’을 추진하기 전까지 우리는 대북 신호정보의 99%, 영상정보의 98%를 미국에 의존했다. ‘미국 정보가 끊기면 큰일 난다’는 고정관념은 이때 생겼다. 그 뒤 30년, 한국은 금강·백두 정찰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4대, 군 정찰위성 5기, 피스아이 조기경보기, 이지스 구축함 4척, 그리고 휴민트까지 갖춘 중견 정보 강국이 됐다. 그사이 미군은 “북한 재래식 전력은 한국이 알아서 하라”며 정보 자산을 중국 감시로 돌렸다. 게다가 이제는 합성개구레이더(SAR) 영상까지 민간 위성에서 싼값에 살 수 있는 시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 이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정보의 절대량보다 분석과 판단 능력이다. 미국의 첨단 정보는 예전처럼 목을 맬 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미국도 한국에 정보를 의존한다. 밥 우드워드의 책 ‘공포’(2018)에 따르면, 한국에서 운영되는 미국의 극비 특별접근프로그램(SAP) 덕분에 미국은 북한 미사일 발사를 7초 만에 탐지한다. 알래스카에서라면 15분이 걸린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 서부에 닿는 데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면, 이 차이는 요격할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번 갈등에서 미국이 끊은 것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장기 위성정보였지, 미사일 조기경보 정보는 아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2016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맺어 일본과 북한 미사일 정보를 주고받아왔다. 2019년 일본은 북한 단거리 미사일의 궤적을 10여차례 놓쳤지만, 한국군은 탐지해냈다.
광고
광고
2023년 12월부터는 미국을 허브로 한·미·일이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여기에는 우리 그린파인 레이더와 이지스함이 잡은 발사 초기 정보가 들어가고, 일본은 동해 너머 탄착 단계의 정보만 보탠다. 일본이 한국의 탐지 정보를 받아 가는 이 체계가 중시되는 것 자체가 한국 정보의 가치를 보여준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한국이라는 기둥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 6월 북한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는 한·미·일 실무그룹 회의에서 국가정보원을 뺐다. 이건 한국만의 손해가 아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북한 소행으로 지목한 2025년 바이비트 거래소의 15억달러 탈취 사건이 보여주듯, 북한 해커들은 전세계를 털어 핵·미사일 자금을 마련한다. 북한 사이버 조직을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에서 추적해온 정보기관을 빼놓고 미국이 얻을 것은 없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못박았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 요구 앞에서 고뇌하던 때를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려운 단호함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이 커졌다는 뜻이다. 한-미 간 정보 협력의 파열음은 이재명 정부가 미국을 잘못 관리해서라기보다, 미국의 거래적 동맹관이 정보 분야까지 번진 결과다. 백번 양보해 장관의 발언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거나 우리가 국익을 앞세워 빌미를 줬다고 치자. 그래도 그 갈등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커지는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힘이 예전 같지 않은 미국이 내는 구조적 파열음이고, 마찰의 소음이다. 주눅 들 필요가 없다. 위기를 부풀리는 동맹 지상주의자나 안보를 정쟁의 땔감으로 쓰는 보수 야당에 휘둘릴 이유는 더더욱 없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