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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29, 2026

“86세대 키워준 건 결국 보수 정치”···천정환이 묻는 민주화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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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과 혁명> 펴낸 천정환 교수가 23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86세대 중심 민주화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최근 <문학과 혁명> 펴낸 천정환 교수가 23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86세대 중심 민주화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작 <문학과 혁명>(서해문집)을 송경동의 시 ‘혁명’ 인용으로 시작한다. “분명히 내가 잃어버린 게 한 가지 있는 듯한데/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민주화의 시대를 거치면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최근 서울 은평구에서 만난 천정환은 “1980년대 사회변혁에 대한 상상이 민주화 이행기(1987년 6월 항쟁~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유실됐는지 살피려 했다”고 말했다. 즉 이 책은 송경동이 공단거리를 걸으며, 전경들 방패 앞에 서며, 아이의 뜨거운 머리를 만져보며 떠올리려 했던 무언가를 망각 속에서 건져내려는 시도다.

흔히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모두 이뤄낸 성공한 국가라고 인식되지만, 천정환은 이런 서사가 “일종의 신화이며 이데올로기”이며 윤석열의 12·3 내란이 그 증거라고 본다. 민주화가 온전히 이뤄졌다면 내란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서사의 핵심요소인 민주화운동 역시 “1970~1990년대에 전개된 변혁운동·노동운동·민족해방운동·여성운동을 뭉뚱그려 ‘자유민주주의’ 안으로 곱게 가져다놓”은 결과다. 결국 천정환에게 민주화란 “기득권 중심의 ‘자유화’였으며,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였다.”

그는 “민주화운동 서사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 전선의 복합성을 다 담아낼 수 없다”며 “민주당 정권 역시 기득권 체제 내에 안주할 뿐, 그 이상의 일을 하려들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특히 민주화운동 서사를 만들어낸 주체인 86세대의 장기적인 헤게모니 장악이 이 같은 현상을 가능케 한다. 노무현이 이명박에게 정권을 내줬을 때 자신을 ‘폐족’이라 불렀던 이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화려하게 부활했다. 윤석열의 내란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천정환은 “86세대는 숫자가 많고 민주화운동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조직적·정치적 역량이 끈끈하다”며 “윤석열이 스스로 거꾸러진 데서 알 수 있듯이 86세대를 키워준 것은 결국 한국의 보수 정치”라고 말했다.

천정환 연구의 본령인 한국문학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지가 전개된다. 기존 학계와 평단에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했던 것은 남성 엘리트 문인들의 시와 소설이었다. 그 바깥에 있던 노동자의 수기, 르포, 소설 등 민중문학은 ‘습작’ 혹은 ‘아마추어’로 치부된다. 천정환은 제도문학이라는 ‘장대한 벽’에 균열을 내고, 문학문화의 범주를 넓히고자 한다.

이인휘 같은 전통적인 노동소설 작가는 물론, 황정은·장강명·손보미 등의 아르바이트생·청년 여성·서비스직 노동자의 삶과 감정을 그린 소설, 희정·한승태 등의 르포까지 새로운 노동문학의 범주에 넣는다. 그는 “리터러시의 최고 단계”인 ‘쓰기’를 갖지 못한 이들의 영상물에도 관심을 보인다. 중소기업 직장인의 삶을 보여주는 ‘이과장’ 같은 유튜버도 ‘서벌턴(사회적 발언권에서 배제된 주변부 주체)은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오늘날의 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문학과 혁명> 펴낸 천정환 교수가 23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86세대 중심 민주화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최근 <문학과 혁명> 펴낸 천정환 교수가 23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86세대 중심 민주화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천정환은 과거 경향신문 칼럼 등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썼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는 “연구부정, 입시부정은 연구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젊은 세대나 제자들은 저를 옹호했다”며 “그런데 정치검찰이 개입된 문제였기 때문에 그 모든 부정이 작은 문제처럼 치부됐다. 제 비판 글이 조리돌림 당하거나 친민주당 성향 교수들의 날 선 반응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천정환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로 대중을 현혹해 탄생한 윤석열 정권은 그 아이러니한 결과”라고 말했다.

‘민주화를 거치며 혁신적 사상가들이 어떻게 기억됐는가’에 대한 그의 시선은 백기완과 신영복을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천정환은 백기완을 두고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희귀한 ‘독립적·토착적 사상가’이자, 본질론적 민족주의를 넘어선 민중주의자로 평가한다. “소설가 공지영이 말한 것처럼 백기완은 어떤 페미니즘 교육도, 제도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그는 실제 삶 속에서 소수자나 여성의 삶을 이해했다.” 평생 제도권 바깥에서 산 백기완과 달리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한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내며 ‘구루’가 됐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가족애·성찰 등 비정치적인 모티브의 산문들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지식인, 서화가, 교육자로서 신영복의 영향은 “1960~1970년대의 ‘통일혁명’이 이 한국 사회에 스민, 그러나 온건하게 변형된 방식의 하나”였다.

천정환은 ‘민주화 이행기’에 청년기를 살아낸 사람이자 이 시기를 연구한 학자로서 ‘양가성’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한국은 좋은 나라가 되었지만 87년 체제의 한계 또한 뚜렷하고 86세대는 청년세대로부터는 대단히 불신을 받고 있다”며 “지난 민주화 30년 세월이 짧은 것인지 긴 것인지 헷갈리고 자괴심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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