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쇠맛’ 나는 글 [이서윤의 인공지능&인권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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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 사법연수원 교수·판사
며칠 전 인공지능과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토론문 초안 제출 요청을 받았다. 마침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에다가 기한도 촉박하여, 고육지책으로 인공지능 ‘클로드’에게 해당 주제에 관하여 내가 지금까지 쓴 글 수십건을 주고, 이것을 주제에 맞게 짜깁기를 하라고 시켰다. 여러 글을 하나로 짜깁기하다 보니 맥락이 중간중간 끊어져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초안으로 제출하기에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검토와 수정을 거치기는 했으나 한가지 마음에 걸린 것은 글에서 ‘쇠맛’(나는 더 강하게 “쐬맛”이라고 표현하고는 한다)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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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손맛이 담긴, 쇠맛 나는 글을 가장 잘 감별하는 것은 놀랍게도 사람이라고 한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놈이 그 맛을 안다고, 인공지능이 쓴 글을 자주 접한 사람일수록 직관적으로 쇠맛을 느낀다는 것이다(작년의 한 연구에서는 인공지능을 자주 쓰는 사람 다섯명의 판단을 모아보니 300건 가운데 한건만 틀렸고, 대부분의 상용 탐지 프로그램보다도 정확했다고 한다).
필자도 여러 업무에 인공지능을 자주 사용하면서 어색한 비유와 과도한 비약, 단정적인 표현 등이 특징적인 쇠맛 나는 글의 감별사급에 도달했다고 자부한다. 한번 쇠맛을 알게 되니, 쇠맛이 강한 글을 읽게 되면 큰 거부감을 느끼는 한편, 과거 직접 인공지능으로 초안을 잡고 쇠맛을 완전히 빼지 못한 글들을 이제 와 다시 읽고 있으면 부끄러움이 무척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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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독창성이 중요하지 않은 인터넷 블로그나 쇼핑몰의 리뷰들은 강한 쇠맛이 나는 글들로 도배된 지 오래인데, 웬만하면 그런 글들은 읽자마자 치밀어오르는 거부감으로 닫아버리게 된다. 이때의 감정은 무엇일까? 글쓴이의 태만함에 대한 실망감? 기계의 언어가 사람의 언어를 대체하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 그런 글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쳤을 리 없다는 불신?
일단 라면 수프로 국을 끓이기 시작하면 무엇을 집어넣어도 수프 특유의 향을 빼기가 힘들듯이, 일단 글에 쇠맛이 더해지면 그것을 빼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인공지능으로 글 자체의 초안을 잡는 것은 가급적 지양하되, 다만 퇴고 시 오류를 잡거나, 리서치 같은 업무에 사용하는 것은 꽤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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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일상생활에서 아주 단순한 메신저 답장까지도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복붙’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외국인에게 낯선 외국어로 답장할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친숙한 모국어로 답을 할 때조차 인공지능으로부터 확인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이런 과정을 통해 천천히 쇠맛에 길들여지고, 모두가 온라인 쇼핑몰 리뷰처럼 쇠맛 나는 글을 생성해내는 세상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도록 무섭다.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고통의 이유는 내가 가진 무형의 것을 언어라는 유형의 것으로 꺼내어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기대어, 내 것도 아닌 것을 쇠맛 나는 언어로 풀어내는 세상이 절대 아름다울 리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젊은 사람들이 훌륭한 문학 작품을 자주 접하면서, 사람 냄새가 듬뿍 나는 글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재생산하는 능력을 함양했으면 한다.
쇠맛 나는 글보다, 못 써도 사람 냄새 나는 글이 더 좋다.
P.S. 인공지능에 동일한 주제로 초안을 작성시킨 뒤 내 글을 보여줬더니 인공지능의 반응: SY님 글이 제 초안보다 낫습니다. 라면 수프 비유, “쐬맛”, 토론문 고백 ― 제가 만들 수 없는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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