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병역 논란을 이용하는 ‘어른’들에게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은 야구 종목에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된 첫 대회였다. 아시안게임은 이미 인기가 없던 시절이다. 모두의 관심은 당시 LA 다저스 소속이던 박찬호 선수의 ‘병역특례’(군 면제)에 쏠렸다. 대표팀은 예상대로 결승에서 일본을 큰 점수 차로 누르고 우승했고, 전 국민이 환호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경기는 손흥민 선수를 위한 무대였다. 막상 그가 금메달을 따자 ‘뒤늦게 와일드카드(24세 이상)로 출전해 군 면제를 받았다’는 세간의 비판은 쏙 들어갔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도 야구와 남자축구에서 어김없이 우승했다. 반응은 사뭇 다르다. 일부 선수들의 말과 행동이 문제가 됐다. 몇몇 정치인들은 “군 면제를 없애야 한다”고 나섰고, 매번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국방부는 “검토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열광했던 야구, 축구의 스타선수 대부분이 아시안게임을 통해 군 면제를 받았다.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들의 활약을 보며 국민들이 얻은 기쁨과 감동은 수치로 헤아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선수 개개인의 성공이나 ‘애국심’의 크기와는 별개로 말이다. 이번에 문제의 발언을 한 선수들을 감싸는 것이 아니다. 병역특례가 이 사회에서 효능을 갖고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적어도 “괘씸하니까”라는 감정이 병역특례 폐지의 근거가 되지는 않길 바란다.
“아시안게임 병역혜택 박탈” 옳은가
갈등 부추겨 이득 취하는 ‘어른’들
남북 평화, 화해 모색엔 침묵
전쟁 나면 나서는 건 ‘젊은이’들
우려되는 건 이번 논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소비하는 ‘어른’들의 방식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보자. “대통령령으로 이번 대회부터 병역특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병역특례를 박탈하자는 얘기다. 정말 그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내뱉은 말일까.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말이다. 병역은 남성들, 특히 2030세대에 예민한 문제다. 안 의원의 발언은 논란 확산을 부추겨 2030 남성들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비난 여론의 화살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돌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병역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정작 근본 원인이 되는 문제에는 함구한 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병역 의무를 아무리 신성시하고 미화해도 병역을 기피하고 싶은 마음을 없애진 못한다. 이등병에게 월급으로 9800원을 주든 75만원을 주든 군대는 결국 군대다. 모두를 군대에 보낼 생각만 하지 말고 다 같이 가지 않을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어른’들의 역할이 있다.
남북이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는 한 징병제도와 이를 둘러싼 병역 논란은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찾아야 한다. 일단 휴전을 끝내고 정전이라도 해보자는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뒤에서 “압도적 핵무장”을 주장하며 “김정은에게 평양 불바다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등 극단적 발언을 쏟아내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안 의원이 진심으로 핵무장을 통한 평화유지를 믿고 있다면 핵무기는커녕 약속한 핵잠수함도 차일피일 미루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이라도 한번 쓰는 게 어른으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병역 문제는 우리 사회 젠더갈등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 이를 교묘하게 악용해 정치적 이득을 누리는 세력도 분명히 있다. 이들 역시 문제의 원인 해소보다는 ‘불평등’이라는 현상 자체만 부각하고 갈등을 조장한다. 상대가 누구든 걸핏하면 “너도 가라, 군대”식의 해법을 난사한다. 이들에게서 남북화해나 평화통일과 관련된 그 어떤 희망적인 제언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덕을 보고 탄생한 게 윤석열 정권이다. 소름 돋는 건 그렇게 대통령이 된 그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인기를 평양에 띄워 북한의 도발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법원은 이 같은 일반이적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의 무모한 도발이 실제 이 땅에 총성을 불러왔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막상 전쟁이 나면 전선에 서는 건 ‘어른’들이 아닌 ‘젊은이’들이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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