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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6, 2026

미국이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인플레가 아니라 경기 둔화와 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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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분석하면 과도한 정부부채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보인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경기 둔화와 침체다. 2025년 9월11일 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를 사람들이 걷고 있다. REUTERS
일본을 분석하면 과도한 정부부채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보인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경기 둔화와 침체다. 2025년 9월11일 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를 사람들이 걷고 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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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정부부채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명제에 허점은 없어 보인다. 부채의 화폐화로 시중에 막대한 본원통화가 공급된다. 통화량 팽창이다. 이에 따라 경제 전체의 총수요는 단기적으로 급증한다. 통화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으니 수입물가가 급등한다. 이는 다시 경제주체의 기대심리를 자극해 물가 오름세를 자기실현적으로 강화한다.

언제나 예외가 있다. 앞의 명제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실례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을 분석하면 과도한 정부부채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보인다. 그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경기 둔화와 침체다.

왜 일본 물가는 안정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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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달러 환율은 2021년 초 약 103엔에서 2026년 10월10일 현재 158엔 정도까지 올랐다. 달러에 대한 가치가 50% 정도 하락했다. 일본은 에너지의 84%, 식량의 67%를 수입에 의존한다. 엔화는 완전한 기축통화가 아니니 그 대금은 달러로 지급한다. 수입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 2026년 4월 엔화 기준 수입 가격은 29%나 올랐다. 생산자물가지수 역시 7.2%에 이른다. 다른 국가였다면 두 자릿수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했을 거다. 그러나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에 미치지 못한다. 일본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9%,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에 불과하다. 미국은 각각 3.4%, 2.4%에 달한다.

통화가치 폭락, 높은 수입 의존도, 선진국 중 가장 높은 부채 수준. 이 모든 것은 인플레이션을 향한다. 한데, 이상하다. 앞에서 보듯 안정적이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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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에너지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 도시가스, 휘발유 요금에 대해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2026년 상반기에만 3조엔(약 25조31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에너지 보조금을 풀었다. 에너지 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전방위적 영향을 고려할 때, 보조금 지급은 물가를 낮추는 핵심이 된다.

일본 특유의 인구, 구조적 요인과 정부의 강력한 개입도 한몫한다. 인구의 고령화와 감소는 주거비를 억누른다. 주택 공급의 과잉 상태는 만성적이다. 에너지 분야 외에 의료, 교육, 대중교통 등 공공서비스 전반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요금 인상을 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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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가격 전가도 제한적이다. 생산자물가가 올라 높아진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는 있지만 부분적이다. 30년간 학습된 디플레이션 심리로 소비자는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지갑을 닫아버린다. 가격 저항이 매우 강하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은 섣불리 원가 상승분 전체를 한꺼번에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못한다. 마진을 줄이거나 비용 절감을 통해 일부를 흡수하며 매우 조심스레 가격을 올린다. 부분적 가격 전가는 물가 상승을 제한한다.

임금 상승도 미진하다. 대기업은 임금을 올리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약 4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 노동자의 실질임금 인상폭은 여전히 미미하다. 경제 전체의 구매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에 수요가 가격을 밀어 올리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지 않다.

지난 수십 년의 통계를 보면 일본에서 인플레이션은 거의 잊힌 단어였다. 1995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 평균치는 0.5%에 불과하다. 1995년에서 2025년 동안 즉, 지난 31년 중 13년은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그나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2년 이후부터 인플레이션이 2%를 웃돌았기에 평균치가 플러스인 상황이다. 최근 일본은행이 물가 대응을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1.25%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보다 상당히 낮다. 수십 년간 지속됐던 제로금리 및 마이너스금리에서 간신히 벗어난 수준이다.

부채의 역효과가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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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와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일본이야말로 그 대상이 돼야 한다.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달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매우 희귀하다. 앞에서 살펴본 것 외에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부채의 거의 전부가 국내 자본으로 조달되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는 극소수다. 이게 핵심이다.

정부의 부채는 공짜 돈이 아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시중에 돈을 푼다고 해서 마법처럼 무에서 유가 창출되지 않는다. 결국 그 돈은 현 경제 시스템 내에 있는 유한한 자본을 끌어다 쓰는 것에 불과하다. 훗날 그 빚의 이자를 갚고 만기를 연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금융시장의 자금은 한정적이다. 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 거대 금융기관이 굴리는 자본은 무한하지 않다. 정부가 국채를 계속 쏟아내면, 금융기관들은 떼일 염려가 없는, 거대하고 안전한 차입자인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데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게 된다. 정상적인 경제라면 이는 민간기업의 투자자금으로 대출돼야 했을 돈이다. 국가경제의 심장을 뛰게 하고 성장을 이끌어야 할 자금을 정부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경제 전반의 투자와 활력을 서서히 갉아먹는 것이다.

2026년 10월8일 미국 워싱턴 미국평화연구소에서 열린 ‘새로운 황금기’ 정상회의에서 빅테크 수장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서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 경제의 효율을 끊임없이 높인다. REUTERS
2026년 10월8일 미국 워싱턴 미국평화연구소에서 열린 ‘새로운 황금기’ 정상회의에서 빅테크 수장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서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 경제의 효율을 끊임없이 높인다. REUTERS

카르멘 라인하트와 케네스 로고프의 ‘90% 룰’은 그런 점에서 일본의 경제 둔화와 디플레이션 압력을 잘 설명한다. 이들은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해 국가부채가 GDP의 90%를 넘어서는 순간, 경제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급격히 느려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빚이 적을 때는 빚내서 도로를 깔면 경제는 성장한다. 하지만 부채가 90%를 넘은 과잉 상태에선 추가로 빚내어 돈을 써봤자 성장은커녕 빚 갚는 부담만 커져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된다.

정부의 돈은 민간기업의 혁신 투자에 비해 비효율적인 곳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단기성 현금 살포나 불필요한 토목공사가 대표적이다. 빚이 쌓이면 정부예산의 상당 부분이 기존 빚의 이자를 내는 데 허비된다. 이자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100원의 빚을 더 내어 시중에 풀어도, 경제가 창출하는 부는 100원 미만이 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돈을 쓸수록 장기적인 경제 체력과 생산성은 고갈된다. 마이너스성장 승수(Negative Growth Multiplier) 현상이다.

일본은 이 이론이 현실화한 가장 극적인 사례다. 일본 부채는 일본 민간부문이 떠안고 있다. 은행, 보험사, 연기금, 개인투자자의 돈은 혁신을 위한 생산적 투자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정반대다. 무위험 수익률을 좇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수십 년의 디플레이션 경험으로 더 가속한다. 정부로의 자본 쏠림은 자본의 비효율화를 만들었고, 이는 민간투자를 억눌러 성장이 지속적으로 억눌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에서 부채는 수요 촉진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비용 견인 인플레이션은 발생하고 있지만 수요에 의한 건강한 인플레이션이 사라진 것이다.

미국이 걱정해야 할 것은?

미국은 어떤가? 일본과 양상이 다르다. 물가가 상당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얼핏 ‘부채와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명제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그래 보이는 이유는 있다.

미국은 일본과 달리 부채를 정당화하는 압도적인 경제 펀더멘털을 유지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경제의 효율을 끊임없이 높인다. 주요 기업들은 야성적 충동으로 가득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한다. 총요소생산성(한 국가의 전반적 기술이나 교육 수준, 사회제도 효율성 등이 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나타내는 지표)에서도 일본과 큰 차이가 난다. 기술, 혁신, 효율적인 자본 배분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가시적인 성장과 임금 상승은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물가가 오르면서 미국 장기물 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탈세계화로 인한 공급망 재편, 친환경 에너지 전환 비용, 막대한 정부의 재정지출 등으로 물가가 계속 높아질 거란 기대는 분명 한몫한다. 하지만 잠재성장률이 높아져 중립 금리가 높아지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해졌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장기 국채 금리는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단기금리의 평균에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을 더한 값이다. 중립 금리 상승으로 금리의 구조적 바닥도 높아졌지만, 정부부채 급증으로 기간 프리미엄, 즉 돈을 오래 빌려주는 것에 대한 대가(보상금) 역시 상승했다. 정부부채 급증이 채권시장의 수급 균형을 무너뜨려 금리 변동성을 키우고 장기 금리의 고점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위협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일본의 경우처럼 정부부채의 구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경제는 기축통화라는 한도 없는 신용카드와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 경제라는 탄탄한 철벽을 동시에 갖고 있어 막대한 부채를 버텨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려는 남는다. 무위험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자본은 민간이 아닌 정부 부문으로 집중된다. 빅테크들은 버텨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의 돈줄은 마를 수 있다. 과연 소수 몇 개의 기업이 끌어가는 경제가 언제까지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까?

일본은 반면교사일 수 있다. 미국은 현재 인플레이션 급등을 걱정하지만 진짜 우려해야 할 것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수십 년 일본을 괴롭힌 낮은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가 마냥 남의 일일 수 없다는 가능성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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