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수납기요? 환자도 기계도 저 없인 힘들죠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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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병원에는 수많은 기계가 있다. 한 사람이 전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 또한 다양하다. 단순 업무부터 최첨단 기술까지 넘나드는 수많은 기계가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모두 인간을 위해 일하는 기계들이다.
평일 기준으로 하루 삼천여명의 환자가 이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본다. 이들은 모두 진료 결과에 따라 수납을 하고 처방전과 영수증을 받아 가야 한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창구에 줄을 서서 수납한다면 대단히 번거로울 것이다. 그래서 병원 로비에는 이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키오스크가 있다. 환자 번호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즉시 결제를 안내하고 영수증과 처방전을 뱉어낸다. 하지만 애초에 처음 보는 기계 앞에서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게다가 이 삼천명은 모두 대학병원을 찾은 환자들이다. 모든 환자가 키오스크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들의 정식 명칭은 ‘무인수납 안내원’이다. 주로 ‘안내원님’이나 ‘안내원 여사님’, 때로는 ‘키오스크 여사님’이라고 불린다. 가끔 의료진끼리도 ‘봉사자님’이라고 혼동해서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파란 조끼를 입고 인자한 인상으로 로비에 서 있는 여성 직원이 친숙하다. 방금 출근한 무인수납 안내원 신정희(65) 여사님을 키오스크 앞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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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키오스크를 만든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에요. 환자분들이 이 기계로 수납하고 처방전 발급받는 일을 돕고 있죠. 아침에 출근해서 기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바로 업무에 들어가요. 키오스크는 병원 세군데에 있어서 저희 팀 네명이 돌아가면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일을 마무리하고 가장 늦게 퇴근해요. 오전 8시에 출근한 직원은 오후 3시에 퇴근하죠. 오전 외래가 열리는 9시부터 12시까지가 가장 바빠요. 서로 오가면서 도와야 해요.”
여사님이 이 기계를 만든 회사에 고용된 직원이었다는 사실은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처음 알았다. 솔직히 ‘봉사자님’이라고 부르던 의료진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업무가 겹치지 않기도 했지만, 항상 누구에게나 친절해서 마치 봉사하는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백화점에서 일했어요. 실적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사람 상대하는 걸 좋아하고 승부욕이 있어서 매출은 좋았죠. 그런데 근무 시간이 너무 길어서 직장 생활과 살림을 병행하기 어려웠어요. 마침 동생이 이 일을 소개해줬어요. 근무 시간이 적당하고 주말에는 쉬더라고요. 강북삼성병원부터 시작해서 벌써 23년째 일하고 있어요. 그때 이 키오스크가 세상에 처음 나왔거든요. 중간에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가 이 병원에서는 20년째예요. 이제 동생은 그만두고 저만 이렇게 오래 하고 있네요.”
2000년대 초반 키오스크가 등장했다. 그땐 모든 사람이 기계를 통해 편리하게 처방전을 출력하는 시대를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환자들이 기계를 완벽하게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회사는 일단 직원을 뽑아서 기계 사용을 도왔다. 그 직원은 23년 동안, 스마트폰이 출현하고 인공지능(AI)에 답을 묻는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근무 중인 여사님에게 일분에 한번씩 서류를 내밀거나 말을 걸며 도움을 요청했다. 여사님이 없는 로비는 상상하기 어려워 보였다.
“기계 사용이 너무 어렵죠. 저도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키오스크 사용법을 몰라서 헤매요. 솔직히 조금 우습기도 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기계 사용을 도왔는데 막상 저도 낯선 기계를 보면 당황하더라고요. 그런데 모든 사람을 다 똑같이 도와드리는 게 아니에요. 젊은 분들은 도와드리려고 하면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며 짜증을 내기도 해요. 반면 나이 드신 분들은 받아 온 서류를 저희한테 그대로 맡기시죠. 이런 분들은 끝까지 다 해드려야 해요. 사람마다 대처법이 다 달라요.”
여사님들은 오랫동안 이직하거나 퇴직하지 않고 함께 일하고 있었다. 자격 조건은 따로 없고 대부분 지인의 소개로 입사한다고 했다. 심지어 근태를 관리하는 사람조차 따로 없다고 했다.
“같은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까 자율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엄수해요. 본사에서 따로 지시가 내려오는 것도 없고요. 아침 인사 정도를 나누죠. 대신 제가 맏언니라서 자체적으로 관리해요. 이 옷도 유니폼이 따로 지급되지 않는데, 환자분들이 저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제가 정한 복장이에요.”
여사님은 매일 깔끔한 흰 티셔츠와 검은 바지에 병원 마크가 붙은 파란 조끼 차림이었다. 자체적으로 근무복을 정한 사연 또한 처음 들었다. 사복이라서 민간 봉사자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여사님은 병원 내 그 어떤 직종보다도 항상 정돈된 차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기계도 한 종류가 아니었다.

“이 오른쪽에 있는 기계는 장애인용이에요. 조금 더 편하게 쓸 수 있죠.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걸 장애인분들이 직접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실제 장애인분들이 오시면 저희가 직접 다 해드려요. 사실상 일반 기계랑 똑같은 셈이죠. 옆에는 제 증명 발급기예요. 진료 확인서를 유료로 발급받으려면 휴대전화로 본인 인증을 받아야 해요. 그런데 문자를 확인하고 인증번호를 입력하는 게 어려워서 저희가 봐드려야 해요. 이건 외부 시디(CD) 영상등록기고요. 이것도 신원을 입력하고 지시에 맞게 시디를 넣어야 해서 다들 어려워하세요.”
옆에서 다른 여사님이 어르신의 휴대전화를 받아 인증번호를 찾고 있었다. 그동안 여사님은 보호자가 가져온 시디를 열어 기계에 넣었다. 이 과정이 막연히 복잡할 거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누군가 손수 도움을 주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몰랐다.
“이 무인민원발급기가 가장 어려워요. 병원에서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서 구청에서 설치한 기계거든요. 이건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을 입력해야 해요. 그런데 어르신들은 지문이 많이 흐려져서 잘 입력이 안 돼요. 손가락을 지그시 눌러드려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죠. 어르신들은 하나하나 도와드리고 지켜봐주길 원하시거든요. 사실 저희 담당 기계가 아닌데 이렇게 유니폼을 입고 서 있으면 당연히 도와주길 바라시죠. 여유가 있으면 저희가 성심성의껏 도와드려야겠지만 환자분들이 몰리면 입 하나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쁘거든요. 가끔 기계가 잘 안된다고 화를 내시거나 민원을 넣는 분도 계셔요.”

구청에서 설치한 기계까지 어떠한 대가 없이 키오스크 외주 직원이 돕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처음 알았다. 한 환자가 여사님에게 치과 외래가 어디냐고 물으며 입안의 염증을 보여주었다. 여사님은 앞에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2층 구름다리를 건너라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오래 근무하다 보니까 병원 지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도와드릴 수 있어요. 사람 응대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누구든 거부감도 없고요. 그런데 가끔 원무과에서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 수납이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창구로 가시라고 안내해드리면 여기서 왜 안 되냐고 화를 내시는 분들이 있어요. 또 진료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항의하는 분도 계시고요. 모든 사람이 병원 진료에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다들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있으시기도 하고요. 이해는 하지만 감정 노동이 힘들 때가 있죠. 또 처방전까지 잘 발급받으셨어도 저희한테 반드시 끝났느냐고 묻고 확인받고 가시는 분도 많아요. 이제 진짜 가도 되냐고요.”
이건 정말 크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기계가 일을 처리해주어도 정말로 이제 끝난 것인지, 혹시 할 일이 더 남은 것은 아닌지 인간에게 확인받고 싶을 때가 있다. 갑자기 휴대용 산소를 달고 있는 고령의 환자가 손짓으로 여사님을 멀리서 불렀다. 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여사님은 어딘가로 가더니 휠체어를 밀고 와서 환자를 앉히고 접수를 도와주었다. 이번에는 다른 환자가 여사님께 팔에 난 발진을 내밀며 어디서 진료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눈앞에 의사를 두고도 여사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셈이었다. 여사님은 환자를 친절하게 피부과 외래로 안내했다.
“직장이 병원이라 많이 배워요. 주변에서 의학 상담을 해오기도 한답니다. 또 환자분들이 저희를 많이 알아봐주세요. 항상 잘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죠. 저희가 가끔 화장실에 가도 단골분들은 기계 앞에 서서 그냥 기다리세요. 혼자 하기 무섭다고 하시거든요. 별거 아니지만 우리가 든든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해요. 음료수를 사다 주시거나 해외여행에서 기념품을 챙겨 오시는 분도 있어요. 오래도록 연락하는 자매 같은 환자분도 계시고요. 저희에게 정말 잘해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내려와서 음료수를 사주셨어요.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모두 슬퍼했죠.”
여사님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업무의 모든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계셨다. 사실 존재 자체부터가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증명과도 같았다. 키오스크 기술이 계속 발전했음에도 이렇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면 그야말로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 아닐까.
“저는 도움을 드리는 직업이에요. 남들 보기에 신뢰감을 주어야 하니까 용모를 단정히 하려고 노력해요. 누군가가 기꺼이 도움을 요청할 만한 모습이어야 하잖아요. 환갑까지만 일하자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칠순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에이아이나 기계는 정확하겠죠. 하지만 여긴 병원이고, 진짜 사람의 감정이나 처한 입장은 에이아이가 모를 것 같아요. 직접 대면해서 설명하고 안내하는 일이 진짜 인간의 일이 아닌가 싶어요. 정해진 값만 내놓으면 막상 사람들은 불안해하더라고요. 사람이 마음을 달래주어야 해요. 공기처럼 보이지 않아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사님은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신뢰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은 단정한 외양이기도 했다. 여사님은 기계에 맞서 사람을 돕는 일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일 자체가 본인의 삶을 돌아보고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계셨다. 에이아이가 세상을 지배해도 인간에게 일이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리고 여사님의 모습은 바로 그 인간의 자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듯했다.

남궁인 작가
작가 남궁인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산문집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제법 안온한 날들’ 등을 냈고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 참여했다.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이대목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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