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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12, 2026

내 배의 닻을 내가 내리는 일은 그만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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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을 펼친 배 위에서 한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모유진 작가가 그렸다. 어디까지 갈지, 어떤 바람을 만날지는 알 수 없어도 스스로 닻을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모 작가는 말한다. 모유진 제공
돛을 펼친 배 위에서 한 사람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모유진 작가가 그렸다. 어디까지 갈지, 어떤 바람을 만날지는 알 수 없어도 스스로 닻을 내리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모 작가는 말한다. 모유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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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려움이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조금 더 사소하고, 그래서 오히려 떨쳐내기 어려운 조각 같은 생각들이다. ‘사람들이 나를 짠하게 보고 있으면 어떡하지. 애쓴다, 저렇게까지 한다고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도, 머릿속에는 어느새 관객석이 가득 차 내가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최근에는 그 관객들이 유난히 자주 찾아왔다. 나는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한동안은 곡을 올리면 평균 조회수가 1만회를 넘었고, 운이 좋으면 10만회가 넘는 영상도 생겼다. 그러다 최근에는 조회수가 5천회 안팎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숫자는 그저 숫자였지만, 내 마음속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술렁거렸다.

‘이거 봐. 사람들은 이제 네 음악에 관심이 없어.’ ‘애초에 네가 잘해서 사람들이 들었던 게 아니야.’ ‘역시 너는 실력이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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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가 줄었다는 하나의 사실 위에 어느새 수많은 문장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내게 직접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내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행동이 운명을 이긴다’의 저자는 자신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내면 서사’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 살아온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다시 행동을 결정한다. 어쩌면 우리는 일어난 사건보다, 그 사건에 대해 내면 서사가 떠들어대는 이야기에 더 오래 붙잡혀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일단 나는 포로 수준으로 잡혀 있는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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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돌아보면 나는 새로운 시도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잘해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 창피해 보이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후회하거나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믿음만큼은 꽤 오래 나를 움직여왔다.

가끔 이렇게 확신이 필요한 순간에 나는 노아를 떠올린다. 산 위에서 거대한 배를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봤을 것이다. 그래도 노아는 끝까지 방주를 완성했다. 노아에게는 하나님이 시킨 일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아도, 사람들이 비웃어도 계속 망치를 들 수 있는 명분이었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그런 확신이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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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악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지, 지금 선택한 일이 정말 나에게 맞는지, 내가 걷는 방향이 결국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머지않아 결정해야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기 때문이다. 노아처럼 분명한 계시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손에 쥔 몇가지 정보만으로 자신을 설득하고, 어느 쪽으로든 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행동이 운명을 이긴다 l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26)
행동이 운명을 이긴다 l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26)

저자는 그 답을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 ‘핵심 가치’에서 찾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정할 수 있다. 잠시 멈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분명히 해두면 정답을 알 수 없는 순간에도 기준이 생긴다. 이렇게 ‘핵심 가치’와 행동이 일치하는 선택이 쌓일수록 자신감과 자부심도 함께 자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전달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신뢰를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종류의 문장을 읽어왔다. 한때는 그것들이 정말로 나를 살게 했다. 인생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보다, 오늘 나의 선택으로 내일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절망에서 걸어 나오게 했다. 실제로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도할수록 예상하지 못한 기회들이 찾아왔고, 그 경험은 나를 긍정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자기 계발을 하다 보면 필수로 걸리는 병이 하나 있다. ‘쉬면 안 될 것 같은 병’이다. 마치 자영업자가 가게 문을 쉽게 닫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루 영업을 쉬면 그날의 매출이 숫자로 비어 보이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는 곧바로 손실처럼 느껴진다. 잘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여기고, 어느 순간부터는 삶 전체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쉼은 회복이 아니라 정체가 되고, 여백은 기쁨이 아니라 불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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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운명을 이긴다’는 모든 결과를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금 달랐다. 저자는 먼저 삶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조건이 다르고,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질병과 가난, 가족의 문제와 전쟁, 재난과 차별도 존재한다. 저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삶에 주어진 이런 조건들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리고 운명과 ‘운’을 구분한다. 운명이 이미 주어진 조건이라면, 운은 그 조건 안에서 살아가며 만들어갈 가능성에 가깝다. 출발선을 선택할 수는 없어도, 어떤 배를 만들고 누구와 함께하며 어느 순간 돛을 펼칠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명론이 맞는지, 자기 계발이 어디까지 유효한지 나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떤 삶은 분명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또 어떤 변화는 한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굳이 내 앞길까지 스스로 막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상상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를 당겨오고, 조회수 하나에 수십개의 문장을 덧붙이며 내 가능성을 먼저 깎아내리는 일. 세상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장애물도 많은데, 그 위에 직접 하나를 더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떤 바람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출항하기도 전에 내 배의 닻을 내가 내리는 일은 그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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