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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7, 2026

[세계의 시, 시의 세계]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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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 시의 세계]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넓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며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며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 울라브 하우게(1908~1994)

진흙탕 같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울라브 하우게의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임선기 옮김)를 읽는다. 시인의 맑은 품성과 간결한 시어가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준다. 울라브 하우게는 노르웨이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원예학교를 다녔고, 과수원 농부로 살면서 독학으로 시를 썼다. 그의 삶이 평화로웠던 건 절대 아니다. 유년기에 두 형과 누이를 연이어 잃은 하우게는 정신병원에 여러 차례 입원했다. 그런 죽음과 혼란 속에서 구원처럼 시를 만났고, 평생 나무들과 살았다. 화자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것은 비 때문만이 아니다. 잎들이 우수수 지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함께 비를 맞은 것이다. 참나무 아래 펼쳐진 시간은 미래를 내다보고, 기다리고, 이해하는 시간이다. 세계에 대한 다정한 근심이 깃들어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무와 나는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생각한다. 그 늙어감이 주는 가을날의 평화가 빗소리처럼 조용히 울려퍼진다. 문득, 나무 아래 서서 비를 맞아본 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연휴에 비가 잠시 지나갈 때, 나는 늙은 벚나무 아래 서서 빗소리를 들었다. 비도 좀 맞았다. 공기에서 나는 세월 냄새도, 눅눅해진 내 머리카락 냄새도 나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가을날이 그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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