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근거 세 번 바뀌어도 자동차는 15%…10조원 부담, 부품사로 번지나
지난해 7월 경기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서 수출용 차량들이 선적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미국의 대한국 관세 부과 근거가 1년 새 세 차례 바뀌었지만 자동차 관세율은 15%에 묶여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한국산 자동차의 무관세 혜택은 사실상 사라졌고,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현대자동차·기아의 관세 비용은 1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관세 부담으로 커진 완성차 업체의 원가절감 압력이 향후 부품사 납품단가로 옮겨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미는 지난해 7월 말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자동차 품목관세도 15%로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이 올해 2월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단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122조 글로벌 관세를 거쳐 지난 7월24일부터 301조 ‘강제노동 관세’를 매기고 있다. 한국산 일반 수입품에는 기본 관세를 포함해 총 12.5%가 적용된다. 자동차는 232조 관세 15%가 그대로 유지됐다.
부담의 크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확연하다. 한국산 승용차는 FTA로 관세를 물지 않았지만 일본·유럽연합(EU)산은 2.5%를 냈다. 한국·일본·EU산 자동차에 15% 관세가 적용되면서 일본·EU는 12.5%포인트, 한국은 15%포인트 올랐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8월 라디오에서 라면 사례를 들어 자동차만 보고 FTA 무력화를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인 자동차는 232조 품목관세로 FTA의 무관세 효과가 사실상 사라졌다.
비용은 완성차 업체의 재무제표에 나타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부담한 관세 비용은 지난해 약 7조원, 올해 상반기 3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두 회사의 합산 EBIT(이자·세전이익)는 2024년 24조원에서 지난해 16조원으로 줄었고 순현금성자산도 약 5조원 감소했다. 관세만을 실적·현금흐름 악화의 원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관세 부담이 수익성과 재무여력에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나신평은 분석했다.
관건은 이 부담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관세 부담은 완성차 업체가 전액 흡수하거나 소비자가격 인상, 원가 절감, 부품 납품단가 조정 등을 통해 분산할 수 있다. 문제는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은 시장에서 원가 절감 압력이 협력사로 이동할 가능성이다. 홍세진 나신평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세미나에서 완성차 업체의 관세 부담이 커지면서 향후 부품 구매가격 결정 과정에서 관세 비용 일부가 납품단가에 반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국내 1차 협력업체 1430곳의 납품금액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90.3%에 달한다. 완성차 업체의 원가절감 압력이 커질 경우 부품사가 납품단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갖기 어려운 구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1월 1차 협력사의 대미 관세 부담을 소급해 전액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관세 비용 자체가 부품사에 전가되는 구조는 아니다. 다만 관세 부담이 장기화하면 완성차 업체가 원가절감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이 과정에서 부품 구매가격이나 납품단가에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게 나신평의 분석이다.
정부는 미국이 자동차 관세 등을 15%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했지만,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자동차 과잉생산을 이유로 진행 중인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투자에 합의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릴 것”이라고 압박하면서 추가 관세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관세 부담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국 현지생산 확대다. 그러나 현지 생산이 늘면 국내 부품사에도 미국 현지 동반 진출과 현지 조달 확대가 요구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관세를 피하기 위한 완성차 업체의 미국 현지화가 국내 부품사의 미국 동반 진출과 현지 조달 확대를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자동차 부품 생산기반과 고용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율이 15%로 정해졌다고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며 “완성차업체의 부담이 납품단가 인하 등으로 협력사에 전가될 경우 자동차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는 만큼 비용 분담 구조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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