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틀 깨고 ‘매잼’ 도시로…달리고 맛보는 세종 감성 여행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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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버금가는 행정도시
수려한 현대 건축물들에 눈호강
러닝 명소 호수공원에 수목원도
조치원 재래시장은 파닭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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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화 끈을 조이고 달렸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길이 있었다. 바람이었다. 지난 4일 오전 8시, 세종시의 아침은 상쾌했다. 러너들에게 최근 신선한 ‘도심 러닝 명소’로 회자되는 세종시. 방축천에서 정부세종청사를 거쳐 세종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달렸다. 방축천은 수변공원이자 도심 속 테마하천공원이다. 하천 폭은 40~50m. 강 양쪽 둔치에는 잘 정비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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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를 뒤로하고 속도를 냈다. 금세 방축천을 둘러싼 건축물에 매료됐다.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수려했다. 단아한 곡선에 세련미까지 담았다. 때론 차가운 직선이 단호하게 한쪽을 점령해 시선을 긴장하게 했다. 건축물들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새초롬하게 웃었다.

5분이 지났을까, 국민권익위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별관도 보였다. 숨이 차올랐다. 다행히 정부세종청사 앞 빨간 신호등이 쉼을 제공했다. 하지만 눈이 이내 바빠졌다. 산업통상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각종 정부 부처를 표기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화살표 방향은 다르지만 궁극의 목적은 같을 터. 그 목적엔 ‘국민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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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는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들어설 행정 도시다. 행정 도시는 여행지로는 매력 없다는 편견이 있다. 흔히 세종을 미국의 행정 도시 워싱턴에 비교한다. 워싱턴은 미국 대표 여행지다. 수려한 근대 건축과 박물관 등을 경험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세종도 이에 버금간다. 호기심 가득한 이들이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숨은 보석 캐듯 뭔가를 찾아내는 ‘조용한 여행’에 좋다.

띠링띠링. 신호등 알림음이 상쾌한 바람에 뺏긴 혼을 다시 불러들였다. 오전 9시, 세종호수공원에 도착했다. 도착 전 사로잡은 건물이 있었다. 국립세종도서관이다. 2013년 개관한, 국립중앙도서관의 분관이다. 건물은 펼친 책을 형상화했다. 세계적 권위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아이코닉 어워드, 한국건축문화대상 등에서 수상한 아카데미 주연상급 건물이다. 짜면 파란색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 아래 도서관이 있었다. 러너의 가쁜 숨도 단숨에 잠재울 만큼 아름다웠다. 펼친 책 모양이라지만 러너 눈엔 휘어진 ‘으’ 자 같았다.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쉬면서 허리를 쭉 펼 때 내는 소리 ‘으’, 그 소리가 건축물로 형상화된 듯했다. 안은 더 아름답다. 통창으로 빛이 가득 들어오는 실내는 책을 벗 삼은 이들의 안식처다. 오전 9시 문 열어 밤 9시까지 운영한다. 주말엔 오후 6시까지만 문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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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큐브 수백개가 모여 정육면체 건축으로 태어난 대통령기록관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근사하다. 기하학 구조의 세종예술의전당과 세종의 랜드마크 ‘이응다리’도 현대 건축의 대표성을 띨 만큼 세련됐다. ‘이응다리’는 한글 ‘ㅇ’을 형상화한 금강 위 다리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해인 1446년을 기념해 다리 둘레를 1446m로 만든 보행교다.
그러고 보면 세종은 체코 수도 프라하처럼 ‘현대 건축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시는 ‘행복도시’란 타이틀을 걸고 도시 계획 단계부터 현대적 미학을 고려한 디자인을 들였다. 정부세종청사를 포함한 부처 대부분이 이런 관점에서 설계됐다. 용을 모티브로 했다는 청사에는 길이가 3.6㎞인 옥상정원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단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이 사용하는 국새 보관함을 차용해 설계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기록물 소장·관리가 목적인데, 청와대 관련 전시도 한다.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작 중 하나다. 들어서자마자 대통령 의전 차량이 보인다. 역대 대통령들의 친필 사인, 역사적 순간을 담은 사진, 국가 간 행사 때마다 받은 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이윽고 도착한 세종호수공원. 형광색 옷을 입고 뛰는 러너 등 달리는 이가 많았다. 역시 러닝 명소다. 호수에서도 바람이 일렁거렸다. 이 공원엔 5개의 테마 섬이 있다. 금강의 물결로 다듬어진 조약돌을 형상화한 672석 규모의 수상무대섬, 축제섬, 모래해변이 있는 물놀이섬, 데크길과 수생식물이 아름다운 물꽃섬, 습지섬 등이다. 산책로 8.8㎞, 자전거도로 4.7㎞가 조성돼 있다.
세종엔 볼거리도 넘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아서 여행객들이 잘 몰랐을 뿐이다. 2020년 10월17일 개관한 국립세종수목원은 여러 면에서 이정표가 되는 자연 여행지다. 국내 첫 도심형 수목원이다. 축구장 90개와 맞먹는 65헥타르에 2834종, 172만본의 식물이 산다. 경기 포천에 있는 국립수목원,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이어 세번째로 국가가 조성한 수목원이다. 사계절전시온실을 포함해 후계목정원, 희귀특산식물원, 민속식물원, 무궁화원, 분재원 등이 있다.



여기에도 건축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 있다. 사계절전시온실은 외떡잎식물인 붓꽃의 꽃잎을 형상화했다. 유려하고 우아한 선이 지붕의 곡선을 이룬다. 최고 높이 32m, 총면적 약 9815㎡ 규모다. 이 건축물도 유리로 돼 있는데, 따스한 초가을 햇살이 닿을 때면 반짝거리는 모양새가 신의 선물 같다. 이곳엔 지중해와 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각종 식물이 전시돼 있다. 2200㎡ 크기의 지중해온실에선 식물 227종을 볼 수 있다. ‘공룡의 먹이’인 울레미소나무, 소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 등이 행복을 선사한다. 식물이 전하는 행복감과 평안은 성질이 다르다. 음식으로 치면 평양냉면 같다. 슴슴한 행복이다.
식물과 예술의 접목도 있다. 오는 12월31일까지 사계절전시온실 중앙홀에서 ‘앙리 마티스, 현대와 마주하다’ 전시가 열린다. 나무들 사이에 마티스의 작업실 등을 재현했다. 그가 그림 소재로 삼은 제라늄 등도 보인다. 파랑, 빨강, 분홍 등 마티스가 사랑한 5가지 색으로 꾸민 정원도 만난다. 마티스가 살아서 수목원을 돌아다니며 붓질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외국인 여행객이 특히 감탄하는 곳이 한국전통정원이다. 사계절전시온실 앞 잔디 축제마당을 지나 작은 천인 청류지원을 건너면 나타난다. 여기엔 창덕궁 후원 주합루 일대를 재현한 ‘궁궐정원’과 담양 소쇄원의 특징을 담아낸 ‘별서정원’이 있다.
도심 여행에 지치고 출출해지면 세종 도심에서 차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세종시 조치원읍으로 가보자. 세종전통시장이 있다. 지역 재래시장은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한 여행지다. 점심 무렵 도착한 시장엔 소탈한 산해진미가 넘쳤다. 순댓국, 묵밥 등 정겨운 우리 음식들이다. 조치원은 파닭의 성지다. 튀긴 통닭과 얇게 채 썬 파를 함께 먹는 파닭 말이다. 신흥파닭, 왕천파닭, 왕장유통이 시장 3대 파닭집이다. 왕장유통은 모래집 등 내장부터 여러 부위를 생으로도 판다. 닭을 튀기던 주인 김소자(70)씨는 “아들까지 3대가 하는데, 40년째야. 하루에 100마리도 튀기고, 많이 하면 500마리도 하지. 안 힘들어”라고 말했다. 세종시엔 돼지갈비 노포 ‘산장가든’이 있는데, 그 집과 쌍벽을 이룰 만한 배포다. 여행객이라면 꼭 찾는 33년 역사의 노포 ‘산장가든’은 중소벤처기업부 선정 ‘백년가게’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세종은 ‘노잼’ 도시가 아니라 ‘매잼’(매우 재밌다) 도시다. 고속철도 오송역에 내리면 세종시가 운영하는 비알티(BRT: Bus Rapid Transit)가 있어 접근도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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