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맡아도 여전한 ‘입양기록 찾기’ 난항···신청자 절반 가까이 하염없이 ‘대기 중’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뿌리의집, 국내입양인연대 등 1970년대 불법 해외 입양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해외 입양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3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박상교씨(59)는 낳아준 부모를 찾기 위해 198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에도 십여 차례 한국을 찾아 부모와 관련된 기록을 찾으려 했지만,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매번 “의미 있는 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다 2023년 아동권리보장원에 정보공개를 신청하자 홀트 측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캐비닛에 보관돼 있던 기록을 찾았다며 “기록은 있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박씨는 해당 기록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받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입양기록을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입양체계가 시행되면서 박씨는 같은 해 11월 아동권리보장원에 다시 입양정보 공개를 신청했다. 하지만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록을 받아보지 못하고 있다. 박씨는 답답한 마음에 다음 달 한국을 찾아 보장원을 직접 방문할 계획이다.
국가가 입양기록 관리와 정보공개 업무를 직접 맡게 된 지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입양정보 공개 신청의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생부모가 사망하면 신원 확인과 정보공개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는 입양인들에게 장기간의 행정 지연이 가족을 찾을 기회마저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입양정보 공개 신청이 시작된 지난해 9월16일부터 올해 7월31일까지 총 2671건의 신청이 들어왔지만 실제 접수된 건수는 1480건(55.4%)에 그쳤다. 나머지 1191건(44.6%)은 신청 단계에서 머무르며 대기 중이었다.
박상교씨가 지난해 11월 아동권리보장원에 입양 기록 공개를 신청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기록이 신청에서 접수 상태로 넘어가지 않고 정체돼있는 화면이다. 본인 제공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민간 입양기관이 주도하던 입양 절차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는 ‘공적 입양체계’를 시행했다. 입양대상 아동 결정부터 양부모 심사·결연, 입양기록 관리까지 국가의 책임을 강화해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민간 입양기관에 흩어져 있던 입양기록 약 26만건을 국가가 이관받아 관리하기로 하고, 지난해 9월16일부터 입양정보 공개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신청 첫날부터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신청이 몰렸지만, 기록 확인과 공개 절차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보장원 측은 인력 부족으로 기록 확인 작업이 지연돼 왔다고 설명했다. 입양정보를 공개하려면 신청인의 입양 당사자 여부를 확인한 뒤 서고에서 관련 기록을 직접 찾아 전자문서로 스캔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지난 6월까지는 이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5명에 불과했다. 7월부터는 20명으로 인력이 늘어났으나, 올해 12월까지만 한시적 예산 지원이 이뤄지므로 그 이후부터는 다시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입양정보 공개 지연뿐 아니라 친생부모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도 인적사항 공개를 제한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은 친생부모의 동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원칙적으로 이름 등 인적사항을 제외한 입양정보만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지만, 친생부모가 사망해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입양인들은 부모의 이름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에는 친생부모가 사망한 경우 동의 없이도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계류 중이다.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된 최자연씨(41)는 친생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부모가 자신을 입양 보내지 않고 직접 키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씨에 따르면 당시 미혼 상태였던 친모가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겼지만,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친부가 친모와 함께 아이를 되찾으러 입양기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부모가 직접 양육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입양 절차가 계속 진행됐고, 최씨는 결국 미국으로 입양됐다.
최씨는 친부의 이름만이라도 알려달라고 보장원 측에 간곡히 요청했지만, “사망한 부모에게는 동의를 확인할 수 없어 이름을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최씨의 간절한 소망은 아버지의 이름을 알아내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것이다.
최씨처럼 친생부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입양인도 적지 않다. 보장원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입양인 친가족 찾기 처리개시 건수는 총 2만4183건으로, 이 중 1만3813건(57.1%)이 친생부모 미동의·사망·동의 여부 확인 불가·소재 불명 등의 사유로 정보공개가 불수용됐다. 불수용 사유별로는 친생부모 소재 불명이 5846건으로 가장 많았고, 동의 여부 확인 불가 5214건, 명시적 미동의 1419건, 친생부모 사망 1334건 순이었다.
전진숙 의원은 “입양인에게 출생기록은 단순한 행정서류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와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일 수 있다”며 “기록을 찾기 위한 행정절차에서마저 수개월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친생부모가 사망해 동의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입양인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