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벨화학상 日교수 “한국이 노벨상? 20년전 뭐했나 자문해보라”

2025 노벨화학상 수상자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교수 인터뷰
평생 밀어붙인 ‘쓸모없음의 쓸모’
과학자 독창성 지켜줘야 성과 나와
꾸준한 소규모 지원이 노벨상 조건
특정 기술 아닌 생태계에 투자해야
“한국이 언제 노벨 과학상을 받냐고요? 20년 전 한국이 어땠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당시 정부가 연구자들의 독창성을 얼마나 지켜줬나요?”
지난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기타가와 스스무 교토대 교수는 한국 과학계를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이 같은 질문으로 답했다. 지난 1일 고려대 특강과 KU-KIST 융합대학원 석좌교수 임용을 위해 한국을 찾은 기타가와 교수는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한국이 과학기술 강국이 되는 비결은 연구자들의 독창성 보호에 있으며 이것은 장기 레이스라고 조언했다.
기타가와 교수는 “한국은 지금까지 응용 분야에 상당히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이 노벨상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려면 20년 전 한국이 기초과학을 얼마나 지원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연구 지원과 노벨상 수상 사이에는 평균적으로 약 20년이 걸리기 때문에, 정부가 그 기간을 기다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기타가와 교수는 다공성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오마르 야기 UC버틀리대 교수, 리차드 롭슨 멜버른대 교수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MOF는 내부 빈 공간에 다양한 물질을 저장할 수 있어 탄소포집의 해결책으로 주목받는데, 기타가와 교수는 MOF에 기체를 저장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밝혔다.
기타가와 교수가 처음부터 스타 과학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환호보다는 거절에 익숙한 변방의 과학자였다. 노벨상을 받은 관련 연구를 발표한 게 1997년. 그전에는 물론, 이후에도 연구비를 확보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MOF 연구를 하고 싶어 대형 연구 과제에 여러 차례 지원했으나, 쓸모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호기심 때문이다. 기타가와 교수는 “과학자를 움직이는 유일하고도 가장 큰 힘은 호기심”이라며 “호기심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만 있으면 과학자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기타가와 교수는 일본학술진흥회로부터 5000만 원 미만의 소규모 연구비를 꾸준히 받았고, 덕분에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기타가와 교수는 “일본의 기초연구 지원 프로그램의 선정률은 약 40%이고, 선정 기준 역시 얼마나 독창적인지를 평가한다”며 “이처럼 과학자의 호기심과 독창성을 지켜줄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 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신진연구자 대상 개인 기초연구과제 선정률은 지난해보다 1.8배 높아졌음에도 아직 24%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일본이 배출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총 27명이다. 아시아 1위, 전 세계에서도 5위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기타가와 교수는 “일본의 경제 규모도, 인프라 투자도 아닌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노벨상을 위한 경제적·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그 나라가 과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유일한 노벨상의 자격이라는 의미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것이 파괴된 일본에서 유가와 히데키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건 당시 일본에게 엄청난 희망이자 환호의 대상이었다”며 “펜과 종이만 있으면 연구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지금의 기초과학 지원과 문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양자 등 특정 전략기술 분야에만 집중 투자하는 최근 과학계 세태에 대해서도 기타가와 교수는 우려를 표했다. 거대한 분야일수록 여러 과학 연구의 협업이 필수적인데, 한 가지만 집중 투자해서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다는 이유다.
기타가와 교수는 “AI 하나만 해도 다양한 과학은 물론, 사회과학, 철학까지 필요하다”며 “우리는 한 명의 과학자, 하나의 분야가 모든 걸 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했다. 이어 “과학에 투자할 때는 유망한 분야를 보고 투자할 게 아니라, 연구 생태계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타가와 교수는 이러한 연구 철학을 ‘쓸모없음의 쓸모’로 요약했다. 당장 쓸모없어 보일지 모르는 연구일지라도, 쓸모는 어느 순간 바람처럼 찾아온다는 것이다. 기타가와 교수는 한국의 과학자들을 향해 “운은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이라며 “한 번 더 생각하고,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은 주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천연자원이 부족한 일본과 한국은 과학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동지”라며 “한국 과학자들의 운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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