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현장]점검 급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
“견습생이라고, 그냥 계약서 안 쓴 연습생.” 한 아이돌 연습생의 이야기이다. 2024년 기준 초등학생이 희망하는 직업 1순위는 ‘아이돌’로 대표되는 미디어산업 종사자이다. 그 배경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K팝의 성공이 있다. K팝 산업의 특징은 무대에 서는 종사자 상당수가 10대라는 점이다. 하지만 미성년자를 핵심 ‘상품’으로 두고 있음에도 이들에 대한 보호 장치는커녕 실태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K팝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만큼 그 이면의 육성 시스템도 이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청소년기의 혹사가 연습생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청소년기에 직업적인 성공이 좌우되는 체육계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됐고, 대학 입시 경쟁에서의 밤샘 공부도 익숙하다. 따라서 ‘고된 경쟁’ 수준을 비교하기보다 산업의 취약성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방송·노동·아동 단체들이 참여하는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는 논의의 부재를 보완하고자 연습생 경험이 있는 16명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육성 시스템은 기준도 계획도 없었다. K팝 산업의 규모를 고려하면 연습생 교육도 체계적일 것 같지만, 좋은 실력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주먹구구식 운영이 대다수였다. 이는 중소 기획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메이저급 아이돌을 배출하는 기획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생들은 ‘월말 평가’를 통해 데뷔조 선발 경쟁을 하지만, 정돈된 평가체계 없이 일부 관계자들의 선호나 개인적 취향에 의존한다. 연습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모뻘 되는 기획사 임원에게 얼마나 아부를 잘하는지, 성희롱과 모욕을 얼마나 견디는지까지 평가 기준에 반영된다고 전했다.
데뷔 계획도 마찬가지다. 체육계엔 대회 일정이 있고 대학 입시엔 수능과 내신 일정이 있지만, 기획사들은 어떤 콘셉트로 언제 데뷔할지 계획이 없거나 비밀에 부친다. 대규모로 모집해놓고 안내 없이 춤과 노래만 연습시키다가 갑자기 준비하는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개선 요청이나 특별한 보상 없이 연습생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근엔 연습생 계약 해지에 대한 우려를 우회하고자 ‘견습생’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체계 없이 막연한 성공, 불안에 의존한 경쟁에 매달려 청소년 시기를 전적으로 투여하게 한 뒤 대부분을 탈락시키는 과정이 반복된다면, 이런 산업에서 세계적인 아이돌이 계속 등장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 수 있다.
결국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얻는 연습생은 극히 일부이고, 상당수는 성인이 되는 시기에 꿈을 바꾼다. 그 과정에서 학습권, 건강권, 위약금 반환 등 상당한 문제를 떠안는다. 다른 경로 전환을 위한 대체 교육 등 청소년 시기에 사회가 마련해야 할 안전망조차 제공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체육계에서는 의무 수업 등 프로로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제도가 정비돼 왔지만, 유난히 이 산업에서는 대비가 없다.
정부는 K팝을 중심으로 ‘대중문화교류위원회’를 만들어 공연, 팬덤 시상식, 전시를 결합한 대규모 축제 ‘패노메논’을 추진 중이다. 대중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면, 축제만큼 중요한 것은 이 업계를 꿈꾸는 아동·청소년들의 지속 가능성일 것이다. 적어도 인터뷰 참여자들은 자신이 꿈꾸던 진로를 위해 열정을 쏟았던 경험 자체는 후회하지 않았다. 기업이든 정부든 아동·청소년들이 꿈을 볼모로 잡힌 채 부당한 양성 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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