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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24, 2026

악당과 혁신의 두 얼굴 머스크…좋아해, 말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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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머스크는 트럼프 정부가 연방지출 삭감, 공무원 축소, 규제 완화, 정부 전산망 현대화 등을 추진한 정부효율부(DOGE)를 4개월가량 이끌다가 이날 트럼프와의 ‘동거’를 공식적으로 마쳤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머스크는 트럼프 정부가 연방지출 삭감, 공무원 축소, 규제 완화, 정부 전산망 현대화 등을 추진한 정부효율부(DOGE)를 4개월가량 이끌다가 이날 트럼프와의 ‘동거’를 공식적으로 마쳤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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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삐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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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시작하자. 나는 일론 머스크를 좋아한다. 첫 문장을 보자마자 화를 내는 독자도 계실 것이다. 요즘은 일론 머스크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욕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 욕먹어도 어쩔 도리 없다. 지금의 일론 머스크는 어떤 인물인가. 정치적으로만 평가하자면 미국 극우의 상징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남자다. 도널드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자다. 그는 미국 중간선거에 지금까지 3억6600만달러를 기부했다. 한화로 거의 5천억원이다. 그 돈으로도 공화당을 이기게 만드는 건 힘들 것이다. 얼마 전 발표에 따르면 전통적 공화당 지지 지역인 텍사스마저 민주당 편으로 돌아섰다. 돈이면 다 되는 건 없다.

아니다. 돈도 돈 나름이다.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의 부자다. 재산이 무려 9085억달러(10월17일 포브스 집계)다. 한화로 1200조원이 넘는다. 2026년 한국 정부 1년 예산은 총 727조9천억원이다. 머스크의 개인 재산만 한국 정부 1년7개월치 예산에 해당한다. 역사상 이 정도로 돈이 많은 사람은 존재했던 적이 없다. 두번째 부자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재산은 3698억달러다. 머스크 재산 절반이 채 안 된다. 일론 머스크가 원하기만 한다면 더 많은 돈을 미국 중간선거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 돈이라면 뭐든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돈이 이렇게 무서웠던 시대는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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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8일 워싱턴디시(DC)의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열린 ‘새로운 황금시대’ 정상회의에서 테슬라·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에게 국가과학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 연구소의 명칭을 ‘도널드 제이(J.)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바꿨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8일 워싱턴디시(DC)의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열린 ‘새로운 황금시대’ 정상회의에서 테슬라·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에게 국가과학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 연구소의 명칭을 ‘도널드 제이(J.)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바꿨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가 지난 몇년간 벌인 괴상한 짓들을 더 떠올려보시라. 사적인 비즈니스맨인 그는 트럼프 정부에 직접 들어가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으로 일했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며 트위터를 인수한 뒤 엑스(X)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렸다(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죽었다). 그가 페이스북을 사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마크 저커버그가 친구라서일 것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 사업체까지 노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다. 머스크는 나와 여러분이 가진 윤리성 따위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는 인물이다. 며칠 전 머스크는 제프 베이조스에게 경고를 날렸다. 아마존이 일론 머스크의 인공지능(AI) 서비스 ‘그록’이 상품을 주문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는 주장이 나온 탓이다. 그는 엑스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아마존 경쟁 업체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세계 최고 부자들이 애들처럼 싸우고 앉았다.

모든 건 너무나도 유아적이다. 지난 몇년간 세계는 철없는 아이들의 놀이터처럼 변했다. 요즘은 뉴스를 켜는 순간 이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도 구분이 잘 안 된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데이터센터를 폭격하자 소셜미디어의 친러 선전, 공작이 급감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 선전을 퍼뜨리던 봇(Bot)들의 활동이 줄어든 것이다.

억만장자들이 만든 인터넷의 진정한 주인공은 더는 인간이 아니다. 봇이다.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그저 알고리즘의 노예가 됐을 뿐이다. 세상을 알고리즘의 시대로 만든 작자들은 모조리 다 억만장자가 됐다. 이놈의 억만장자들은 예전의 억만장자와는 또 다르다. 에고(ego)를 감추는 법이 없다. 몰래 세상을 움직이던 지난 세기 부자들과는 달리 자기들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감추려 들질 않는다. 제프 베이조스는 아내를 위해 패션잡지 ‘보그’를 펴내는 출판 기업 콘데나스트도 샀다. 둘의 결혼 화보는 ‘보그’ 표지가 됐다. 부끄러움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건 좀 부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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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놈의 새로운 억만장자들을 존경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다. 그들은 뭘 만들질 않는다. 마크 저커버그가 뭘 만들었나. 얼마 전 그는 안경을 하나 출시하긴 했다. 에이아이 스마트 안경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고도 에이아이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쓸모없는 포부다. 구글도 ‘구글 글라스’라는 안경을 새로 업데이트해 출시했다. 그것 말고 그들이 만드는 건 딱히 없다. 나는 대체로 억만장자라는 인간들을 신뢰하지 않지만, 그나마 지난 세기 억만장자들은 보이는 뭔가를 만들었다. 자동차를 만들었다. 비행기를 만들었다. 배를 만들었다. 미디어도 만들었다. 요즘 억만장자들은 보이지도 않는 걸 만들어 돈을 번다. 내가 너무 옛날 사람이라 가진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스페이스엑스의 로켓 기술을 접목해 만든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선보였다. ‘로드스터’가 압축가스를 분사하며 공중부양을 시연하고 있다. 테슬라 제공/AFP 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각)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스페이스엑스의 로켓 기술을 접목해 만든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선보였다. ‘로드스터’가 압축가스를 분사하며 공중부양을 시연하고 있다. 테슬라 제공/AFP 연합뉴스

그나마 일론 머스크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일단 뭘 만들기는 한다. 뭘 잘 만들기까지 한다. 나는 테슬라 로드스터 공개 시연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았다. 흡입 장치를 이용해 거꾸로 된 경사로를 주행하더니 압축 공기 추진기로 공중 도약을 했다. 맞다. 이벤트다. 쇼다. 나처럼 얄팍한 인간들을 꾀려고 벌인 과시용 행사다. 얄팍한 나는 꾀이고 말았다. 감탄하고 말았다. 과학적 상상력의 영역에 있던 것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감탄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테슬라의 압축 공기 추진 기술은 일론 머스크의 또 다른 회사 ‘스페이스엑스’가 개발한 것이다. 지난 몇년간 스페이스엑스는 우주로 쏘아 올린 로켓 추진기를 회수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나는 머스크가 인간을 곧 화성으로 보낼 거라 믿지 않는다. 그래도 스페이스엑스의 기적에 가까운 기술 혁신 앞에서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인류가 화성에 가는 날을 고대하던 소년의 마음이 되고야 만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일론 머스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일론 머스크를 좋아한다. 나는 그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그가 기술적으로 놀라운 혁신가라고 확신한다. 나는 머스크가 그리는 정치적 미래를 믿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기술적 미래를 믿지 않을 도리는 없다. 결국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기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와, 그런 성취로 얻은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평가를 구분한 뒤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고야 만다.

토머스 에디슨은 현대 문명을 통째로 바꾼 위대한 발명가였다. 그 없이 20세기 문명은 존재할 수도 없었다. 동시에 그는 경쟁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비윤리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산업을 독점하려 했던 악당이었다. 여러분은 에디슨을 존경하는가? 싫어하는가? 나는 아직 에디슨도 좋아할지 말지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이 글은 박정희가 싫기도 한데 좋기도 하다고 말하는 내 아버지 세대 같은 소리로 끝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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