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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1, 2026

[미디어세상]말과 사슴, 그리고 재갈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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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풀을 뜯는 목초지에 사슴이 나타나 다툼이 벌어졌다. 말은 사슴을 당해낼 수 없자 지나가던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람은 말에게 재갈을 물리고 등에 올라탈 수 있게 해주면 사슴을 물리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말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사슴을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말은 인간의 고삐와 재갈에 영원히 얽매이는 신세가 되었다.

만성적인 경영난과 시장의 위기에 직면한 언론사에도 새로운 자본은 구원의 손길처럼 다가온다. 인수자는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겠다며 언론사의 문을 두드린다. 말이 사슴을 물리치기 위해 인간의 도움을 받아들였듯, 언론사 역시 생존을 위해 자본의 손을 잡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소유권과 경영권을 확보한 인수자가 처음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소유주는 인사권과 조직 개편, 예산 배분을 통해 언론사 운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보도 방향이 소유주 개인이나 모기업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순간, 편집권 독립이라는 약속은 흔들리기 쉽다. 경영을 살리기 위해 내준 권한이 언론의 자유를 옥죄는 족쇄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경영은 회생했더라도 권력과 자본을 비판할 수 없다면, 그것은 파우스트가 젊음을 얻는 대가로 영혼을 저당 잡힌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자본의 참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언론사도 지속 가능한 경영 기반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편집권 독립이 인수자의 선의와 재량에만 의존한다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약속 자체가 아니라, 그 약속을 뒤집을 수 없도록 만드는 제도와 구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13년 제프 베이조스에게 인수된 뒤 한동안은 소유주에 관련된 것을 비롯해 성역 없는 탐사보도를 이어갔다. 2021년 아마존 물류창고의 높은 부상률을 고발했고, 2022년에는 사측의 노조 결성 방해 정황을 보도했다. 소유주의 선의가 아닌, 편집권 독립의 전통과 뉴스룸의 자율성이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4년 대선 후보 지지 사설 무산, 2025년 만평 개입 논란, 2026년 대규모 인력 감축은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오랜 전통도 언제든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론의 가치는 소유주의 재산권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권력을 감시하고 성역 없이 보도하는 것은 언론이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다. 따라서 편집권 독립은 인수자가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최근 중앙일보의 매각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채권자와 주주의 피해를 줄이고 경영을 정상화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기업 인수 사안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 공론장의 한 축이 바뀌는 중대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번 매각을 그동안 지적돼 온 지배구조의 한계를 바로잡고, 소유와 편집의 분리, 편집 책임자의 독립성 등을 제도로 정착시킬 기회로 삼아야 한다.

말은 사슴을 물리쳤지만 대가로 재갈을 물었다. 언론도 자본의 힘을 빌려 위기를 넘길 수 있지만, 편집권을 내준다면 존재의 본령을 잃는다. 중앙일보 매각을 계기로 편집권 독립을 선언이 아닌 제도로 확립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언론계와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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