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비밀의 문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은 고기를 먹지 않는 분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설명해주셨다. 물고기 반찬을 보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바닷속에서 천적을 보면 무서워서 바위 뒤에 숨기도 하겠지요?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하니 먹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주인공은 동물이 많았다. 그들에게 감정과 생각이 있다는 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동물이 죽어서 고기가 된다는 설명은 낯설었다. 농장 동물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 도축을 거친 결과라는 것을 열세 살인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날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만화영화, 동화책에서 동물은 어린이의 친구였다. 그 친구는 고기가 되어 내 입으로 들어온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 처음 맞닥뜨린 세상의 부조리였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 종종 그 선생님이 떠올랐다. 5년 전 염소가 병원에 왔을 때도 그랬다. 태어난 지 1개월 된 작은 염소는 끝없이 비명을 질렀다. 믿기 힘들 정도로 크고 높은 소리였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전화벨 소리도 묻힐 정도의 큰 소리였다. 묵묵히 엑스레이를 찍고 부목을 대서 붕대를 감았다. 울타리에 끼어서 앞다리가 골절된 상태였다. 처치 후 통증이 덜해졌는지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제서야 자세히 녀석을 살펴볼 수 있었다. 검은색에 흰색 털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고 털은 아주 보드라웠다. 바닥과 평행하게 뻗은 두 귀는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눈 사이가 멀고 납작한 이마, 반짝이는 눈이 귀엽고 똘망똘망해 보였다.
한 살이 좀 넘으면 이 염소는 도축돼 식당, 건강원으로 판매돼 고기와 진액으로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 비닐 포장된 진액과 식당의 수육, 백숙에서 살아 있는 염소를 떠올리기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염소의 비명을 들으며 함께 전율했고, 작은 소리에도 쫑긋 움직이는 귀에서 호기심을 읽었다. 동물병원 현장에서 느끼는 동물의 호기심은 나에게 삶의 의지로 번역된다. 나로선 마트 진열대의 축산 코너에서 도축 전에 느낄 동물의 공포, 도축될 때의 고통, 흘러나왔을 따뜻한 피 같은 것을 떠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
작가 남종영은 책 <동물권력>(2022)에서 동물을 “자신의 삶과 죽음, 탈출과 저항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바꾸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동물의 눈빛과 몸짓, 그들이 처한 고통은 인간의 내면에 가닿아 강렬한 감정적 파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구, 밀폐된 돈사 화재로 매년 불타 죽는 돼지, 가축전염병으로 구덩이에 파묻히는 수많은 동물들… 이들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인간 중심의 세계를 바꾸는 존재들이다.
병원에서 만난 염소 역시 나를 변화시켰다. 고기 이전의 생명을 볼 비밀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 이후 나에게 동물은 집단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가 되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닭은 하루에 2억, 돼지는 400만, 소는 90만마리가 매일 도축된다. 거대한 숫자 안에서 이제 나는 고유한 시간을 살고 저마다의 감각을 가진 각각의 삶과 죽음을 떠올린다. 그 인식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동물과 함께 보내는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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