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상사전문법원의 설치가 시급하다
전문법원(Specialized Court)은 민사·형사·행정 등 다양한 사건을 다루는 일반법원과 달리, 특정 법률 분야나 성격의 사건만을 전담하도록 설치된 법원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여러 전문법원이 있고 또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1963년에 가사·소년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가정법원이 문을 열었고, 1998년에는 특허법원과 서울행정법원이 출범했다. 2017년 3월 서울회생법원이, 2023년 3월에는 수원회생법원과 부산회생법원이 개원해 도산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전문법원은 여러 장점이 있다. 법관들이 해당 분야의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다 보니 재판의 질이 높아지고, 축적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쟁점을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어 재판도 빨라진다. 전국적으로 유사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처리하면서 판결의 통일성과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회생법원 사례를 보면 이러한 장점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사법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23년 3월 수원회생법원 개원 이후 법인파산과 법인회생 사건의 평균 처리기간은 2022년 각각 58일과 73일에서 2024년 28일과 29일로 단축됐다. 같은 시기에 개원한 부산회생법원도 법인파산과 법인회생 사건의 평균 처리기간이 각각 111일과 91일에서 33일과 45일로 줄었다. 서울회생법원 역시 개원 이후 실무준칙 제정, 유관기관 및 학계와의 협력 강화, 직원들의 전문성 향상과 전문인력 확보 등을 통해 인적·물적 자원이 모아지고, 조직의 역량을 높이면서 재판의 질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 전반의 기능적 분화와 고도화에 비례해 법원이 다루는 분쟁 역시 질적·양적으로 비약적인 고도화를 겪고 있다. 그만큼 재판에는 법리뿐 아니라 해당 전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과거에는 법관이 순환근무를 하며 여러 종류의 사건을 두루 맡는 방식으로도 대부분의 분쟁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 금융, 기업지배구조처럼 지식의 양이 방대하고 변화 속도가 빠른 영역에서는 지금처럼 2~3년마다 사무분담이 바뀌는 법관들로서는 효율적이고도 적정한 재판을 도모하기 어렵다. 재판이 사회의 기능적 분화와 고도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소송은 길어지고 결과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지며, 그 부담은 결국 당사자와 사회 전체가 진다. 법과 유리된 현실, 시대에 뒤떨어진 판결을 바로잡는 판사의 용기도 결국은 전문성에서 나온다. 법원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현상유지적 판결들만 나오게 되고 결국 법적 구제를 바라는 약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주주대표소송, 증권 관련 집단소송, 첨예한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무효 소송 등 전문적이고 복잡한 상사분쟁의 증가는 상사전문법원의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일반적인 법률지식을 넘어 재무·회계·경영·자본시장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요한다. 나아가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경영자, 근로자, 채권자 등 다면적 이해관계를 정밀하게 조율해야 한다. 죽어가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문화된 회생법원이 필요하다면 살아 있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사전문법원은 더욱 필요하다.
상사전문법원의 설치와 전문법관의 배치는 세계적인 추세다. 이스라엘은 2010년 텔아비브 지방법원에 경제분쟁을 전담하는 재판부를 둔 이후 재판기간의 중간값이 1601일에서 634일로 줄었으며, 조기 기각과 조기 합의도 늘었다.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의 법관은 순환근무 없이 12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영국은 1895년 런던에 상사법원을 두었고, 대만은 2021년 7월 지식재산법원을 개편해, 상장회사 관련 중대 상사사건 등을 맡는 지식재산 및 상업법원을 출범시켰다.
전속관할이 정해진 주주대표소송과 기업 관련 가처분, 상사비송사건, 증권 관련 집단소송 등 특정 사건들을 처리하는 상사전문법원이 설치돼야 하고 상당 기간 근속할 전담법관들이 배치돼야 한다.
지난달 29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개최한 ‘주주 충실의무와 상사특별법원 도입’ 세미나에서 김재남 인천지방법원 판사는 법관이 2~4년마다 근무 권역이나 법원을 옮기고, 같은 법원에서도 사무분담이 바뀌면서 다른 종류의 재판을 맡는 현실을 마치 2~3년마다 전공을 바꾸는 의사가 암 수술을 집도하는 것에 비유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처럼 기업의 존폐와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운명이 걸린 고난도 상사재판에도 고도로 축적된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업과 자본시장, 나아가 국가 경제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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