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37) '평화·전쟁' 두 얼굴…아비 에티오피아 총리

개혁·화해로 노벨평화상…통합국가 집념 속 내전 수렁으로
총선 압승에 3번째 임기 눈앞…정치적 포용·지역분쟁 해결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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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원자력주간 포럼에 참석한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노벨평화상 수상자에서 전쟁 지도자로.
한때 아프리카가 배출한 개혁 지도자라는 찬사를 받은 아비 아머드(50) 에티오피아 총리에게 따라붙는 상반된 평가다.
평화의 상징과 내전의 책임자라는 두 얼굴의 배경에는 분열된 에티오피아를 하나의 강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그의 집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비는 1976년 8월 에티오피아 서부 오로미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에티오피아 최대 종족인 오로모족의 무슬림이었고, 어머니는 기독교를 믿는 암하라족이었다.
다민족·다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한 그는 오순절교회 신자가 됐다.
10대였던 1991년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군사정권에 맞서 싸우던 오로모계 무장조직에 가담했다. 정권 붕괴 후 군사훈련을 거쳐 1993년 국방군에 들어갔다.
1995년 르완다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복무하고 1998∼2000년 에리트레아와의 국경전쟁에 통신·정보 장교로 참전했다.
군 복무 중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남아공에서 암호학 과정도 이수했다.
이후 사이버 보안·정보기관인 정보네트워크보안청(INSA) 창설에 참여해 간부로 활동하다가 2010년 중령으로 군복을 벗고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2017년에는 종교 갈등의 전통적 해결 방식을 연구한 논문으로 아디스아바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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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주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대사관 재개관 행사에 참석한 아비 총리(왼쪽)와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학기술부 장관과 집권 연정의 오로모계 정당 지도자를 거친 아비는 반정부 시위와 비상사태로 국가가 흔들리던 2018년 4월, 41세의 나이로 총리에 올랐다.
취임 초기 변화는 파격적이었다. 정치범 수천 명을 석방하고 해외의 반체제 인사와 무장단체에 귀국길을 열었다.
언론 통제를 완화하고 내각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웠으며 평화부를 신설했다.
통신을 비롯한 국영 부문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며 경제 개방에도 나섰다.
특히 국경전쟁 이후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로 대치하던 에리트레아에 손을 내밀었다.
2018년 7월 에리트레아 수도 아스마라에서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대통령과 평화·우호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듬해 에리트레아와 국경분쟁 해결에 앞장선 공로로 그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겼다.
당시 43세였던 아비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프리카의 젊은 지도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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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 메달과 증서를 들어 보이는 아비 총리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1991년 군사정권 붕괴 이후 에티오피아는 종족별 지역에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민족연방제를 구축했다.
티그라이족 정당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은 집권 연정을 주도하며 약 30년간 정치권과 군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비는 종족별 권력구조가 국민을 갈라놓는다고 봤다.
2019년 집권 연정을 해체하고 TPLF를 제외한 주요 참여 정당들을 합쳐 번영당을 출범시켰다.
종족별 정당의 연합체를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해 중앙정부의 구심력을 강화하려는 구상이었다.
TPLF는 이를 민족연방제를 약화하고 권력을 중앙에 집중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였다.
종족 간 충돌과 권력투쟁 속에서 정치적 개방도 후퇴해 반대파와 언론인이 다시 체포되고 인터넷 차단과 비상조치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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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에티오피아 정부를 규탄하는 티그라이 시위대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0년 중앙정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총선을 연기하자 TPLF는 티그라이에서 지방선거를 강행했다.
양측은 서로의 정통성을 부정했고 그해 11월 TPLF 병력이 연방군 북부사령부 기지를 공격한 것을 계기로 연방정부가 군사작전에 나서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아비는 법질서 회복을 위한 단기 군사작전이라고 선언했지만, 내전은 2년간 이어졌다.
정부군과 TPLF는 물론 정부 편에 참전한 에리트레아군과 지역 무장세력도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약탈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투와 기아, 질병에 따른 사망자는 수십만 명으로 추정된다.
아비는 2021년 반군이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진격할 가능성이 커지자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향해 국민에게 참전을 호소했다.
내전은 2022년 11월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에티오피아 정부와 TPLF가 적대행위 중단 협정에 서명하면서 사실상 멈췄다.
아비는 군사작전을 명령한 지도자였지만 협상을 선택해 대규모 교전을 멈춘 당사자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오로미아와 암하라 지역에서는 무장 충돌이 이어졌다.
특히 각 주의 특수부대를 연방군과 경찰에 통합하려는 정책은 암하라 지역의 반발을 초래해 중앙정부와 지역 무장세력 간 충돌로 번졌다.
통합국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오히려 지역사회의 불안과 저항을 자극하는 역설이 반복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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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대에티오피아 르네상스댐 준공식에서 연설하는 아비 총리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비는 경제 개발과 국가 위상 제고에도 힘을 쏟았다.
에티오피아는 2024년 브릭스(BRICS)에 가입했고 이듬해 아프리카 최대 수력발전 시설인 대에티오피아 르네상스댐(GERD)을 완공했다.
바다로 나가는 통로도 핵심 국가 과제로 삼았다. 인구 1억3천만 명이 넘는 에티오피아는 한때 연방을 구성했던 에리트레아가 1993년 독립하면서 해안선을 잃어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내륙국이 됐다.
아비는 바다에 안정적으로 접근할 권리를 국가의 '존립 문제'로 규정하고 해상 통로 확보를 위한 외교 행보에 나서고 있다.
2024년 소말릴란드와 해안 사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소말리아의 반발을 불렀고, 노벨평화상 수상의 계기가 된 에리트레아와의 관계도 다시 악화하고 있다.
그는 외교적 노력으로 해상 통로를 확보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역내 긴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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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에티오피아 의회에서 연설하는 아비 총리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총선에서 집권 번영당이 압도적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아비의 세 번째 임기는 사실상 확정됐다.
그는 오는 10월 새 의회의 공식 선출 절차를 거쳐 다시 5년간 국정을 이끌 예정이다.
총선 뒤인 지난 8월에는 야당 인사 2명과 야당 측 변호사가 테러 모의 혐의로 체포됐고, 야당은 근거 없는 혐의라며 반발했다.
올해 50세인 아비 총리가 정치적 반대 세력 포용과 지역분쟁 해결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parksj@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12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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