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굽히지 않은 ‘청암 언론정신’ 기념관 세워 알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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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언론인들이 청암 송건호(1926~2001) 선생님에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권력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언론인의 양심과 진실을 향한 소신입니다. 선생은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며 평생 살아오셨죠.”
올해 설립 10년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이사장 김병국)는 오는 12일 오후 6시 충북 옥천군 옥천읍 복합문화공간 명가에서 첫 ‘후원의 밤’ 행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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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청암 탄생 100년을 앞두고 열리는 이 행사에서 사업회는 그간 ‘참 언론인’ 송건호의 정신을 알리려 해온 활동을 소개하고 충북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 청암 생가터에 지을 예정인 송건호기념관 건립에 대한 지지·후원을 요청할 참이다. 1부 기념식과 2부 후원의 밤 순이며, 청암 고향 주민들의 오카리나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올해로 6년째 사업회를 이끌고 지난 8월 첫발을 뗀 청암송건호기념관건립준비위 위원장을 맡은 김 이사장을 지난 28일 이메일로 만났다. 연 매출 600억원대로 본사가 옥천인 한식 반찬 제조사 교동식품 대표인 김 이사장은 대전 서구에 위치한 민간단체 평화통일교육센터도 이사장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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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하고 초대 사장을 지낸 청암은 한국 자유언론운동의 상징적 존재이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던 1975년에 자유언론 운동을 펼치던 후배 기자들이 박정희 정권의 압박으로 강제 해직당하자 스스로 사직서를 던지며 후배 기자들 편에 섰다. 1984년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아 월간 ‘말’을 중심으로 민주언론운동을 펼쳤고 1987년 6월항쟁 이후엔 ‘세계 최초의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신문 창간을 이끌고 1988년부터 5년 동안 사장을 지냈다.
사업회는 설립 이후 청암 송건호 언론문화제를 열어 올곧게 지역 공론장을 지키는 언론인에게 ‘송건호 풀뿌리언론상’을 시상해왔다. 주민이 직접 지역 여론을 전하는 미디어 플랫폼인 옥천 에프엠(FM) 공동체라디오 ‘오비엔’(OBN)을 개국해 주민들과 소통해왔고 기획취재 공모전 등을 통해 예비 언론인 발굴과 저널리즘 교육에도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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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회가 현재 역점을 두는 사업은 기념관 건립이다. 후원의 밤에서도 지역의 정·관·언론계 및 사회운동 쪽 참석자들에게 한국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는 물론 한국 현대사 연구에 평생 헌신한 청암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건립 취지를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김 이사장은 청암 생가에 건립할 기념관에는 청암의 삶은 물론 한국 언론사와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살필 전시 공간이 들어서며 청암 정신을 이을 예비 언론인을 키우는 교육·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된다고 밝혔다.
“기념관이 과거 기억에 그치지 않고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들이 청암 정신을 배우고 언론의 역할과 책임,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어요. 우리 사회 역사와 언론의 가치를 배우는 열린 공간이자 언론 자유의 소중함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기념관이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그는 기념관이 주민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소로도 의미 있게 활용될 것이라고도 했다.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해요. 주민들의 민주 의식을 높여주는 살아 있는 기념관을 만들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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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은 이어 기념관 건립을 통해 청암의 생애와 해방 이후 한국 언론인들이 언론 자유를 지키며 겪은 탄압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해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오는 12일 사업회 첫 ‘후원의 밤’ 행사
자유언론·민주화 운동 공적 소개하고
추진 중인 기념관 건립 지지 요청 뜻
“예비 언론인들에게 언론의 가치와
언론자유 소중함 전하는 장소로 활용”
생가 옥천 군북면 비야리에 세울 예정
기념관 건립 상황을 묻자 그는 “준비위를 중심으로 부지 확보와 건축 규모, 전시 콘텐츠, 교육·세미나 공간 구성 등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가장 큰 어려움은 부지 확보와 재원 마련”이라고 했다.
옥천군(군수 황규철)은 기념관 건립을 위한 인프라 조성을 위해 지난해 1억8천만원 예산을 편성해 생가터 주변 일부 땅을 매입했다. “기념관을 조성하려면 생가터 인접 주택을 추가로 매입해야 하는데 협의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는 이어 “청암을 바라보는 일부 정파적 시선도 넘어야 할 과제”라고 했다. “선생은 특정 정당에 속해 활동한 분이 아니라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참 언론인인데 선생에 대한 권위주의 시대 사찰과 감시가 고향까지 영향을 주어 선생의 삶과 정신을 특정 정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김 이사장은 한겨레신문 초창기에 동대전 지국을 4년 운영했다. 5공 초기 민주화운동으로 1년2개월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뒤 입학한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청암의 한국 현대사 강의를 수강한 인연이 있다.
“해방 전후 지도자들의 변절과 극한 상황에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에 대한 선생님 강의 내용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제가 1980년대에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총무부장으로 전두환 정권과 싸울 때 청암이 사실상 발행인 역할을 한 ‘말’지 인쇄를 대전의 한 인쇄소에서 할 수 있도록 경찰 눈을 피해 도와준 일도 있죠.”
그는 연 매출 수백억대 회사의 시이오다. 이사장까지 맡아 청암을 기리는 데 앞장서는 이유는?
“선생님과 개인적인 인연도 있지만 지역 주간 신문인 옥천신문(1989년 창간)의 출발이 제가 운영하던 한겨레신문 동대전지국 옥천 분국에서 출발한 인연도 있고 지역 언론으로 옥천신문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서죠. 옥천신문사와 옥천 공동체라디오가 지역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송건호 선생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희생과 형극의 삶을 살았습니다. 너무 존경하는 선생의 생애가 후세에 길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오늘날 언론인들이 청암에게 배워야 할 게 뭔지 물었다. 그는 “언론인들은 기사를 통해 세상을 발전시키고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오늘날 언론 환경은 크게 달라졌지만, 언론이 지켜야 할 본질은 변하지 않았어요. 어떤 권력이나 이해관계에도 휘둘리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 보도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언론 역할입니다. 무엇보다 언론인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자세가 중요해요. 송건호 선생의 삶은 참언론이 무엇인지, 언론인이 어떤 자세로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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