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리”…82살 에디 고메스가 불러낸 빌 에번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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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번스가 형 해리에게 바친 곡입니다.”
지난 19일 서울 성동구 성수아트홀, 빌 에번스의 곡 ‘위 윌 미트 어게인’의 서정적 선율이 객석을 천천히 채웠다. ‘재즈계의 쇼팽’ 에번스와 가장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베이스 연주자 에디 고메스는 이 곡을 소개하며 “에번스와 함께한 11년은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음악가이자 예술가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었던 배움의 시기였다”고 돌아봤다. ‘위 윌 미트 어게인’은 에번스가 각별했던 형의 비극적 죽음 뒤 헌정한 곡이다. 에번스는 1980년 같은 제목의 마지막 스튜디오 음반을 내고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빌 에번스 트리오에서 가장 오랜 기간 베이스를 연주한 고메스는 피아니스트 스테판 칼슨, 드러머 스티브 프루잇과 함께 이날 무대에 섰다. 관객들은 1960~70년대 모던 재즈의 황금기를 관통한 거장의 연주에 흠뻑 매료됐다. 고메스가 1966년 봄 뉴욕 맨해튼의 재즈클럽 빌리지 뱅가드에서 에번스를 처음 만난 지 60년 되는 해에 열린 뜻깊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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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4일 82살 생일을 앞둔 고메스는 바로 전날 대구에서 공연하고 올라왔는데도 자신의 몸집에 버금가는 콘트라베이스를 장난감처럼 움직였다. 현을 뜯는 피치카토로 저음을 팽팽하게 조였다가 순간적으로 힘을 빼 여백을 만들었다. 때로는 현을 연주하면서 악기 몸통까지 두드리는 퍼커시브 주법으로 현악기와 타악기의 소리를 한꺼번에 끌어냈다. 몰아칠 때와 멈춰설 때를 정확히 가르는 리듬감과 절제미가 살아 있었다.

트리오 한가운데 선 그는 지휘자처럼 흐름을 조율했다. 피아노가 앞으로 나오면 자리를 내주고, 드럼이 리듬을 확장하면 어느새 같이 파고들었다. 앞서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모든 빈 곳을 채우려 하지 않고 무엇보다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던 그의 말이 연주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세 악기가 서로의 호흡을 읽으며 움직이는 인터플레이의 묘미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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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조지 거슈윈의 ‘마이 맨스 곤 나우’로 문을 열었다. ‘위 윌 미트 어게인’에 이어 ‘에브리싱 아이 러브’ ‘스텔라 바이 스타라이트’ ‘올 더 싱스 유 아’ 등 익숙한 스탠더드 곡이 이어졌다. 트럼펫 연주자 디지 길레스피 특유의 부푼 볼을 떠올리며 작곡한 ‘칙스’도 선보였다. 고메스는 무대 사이사이 곡을 설명하고, 농담을 건네며 객석과 거리를 좁혔고,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보냈다.

막바지에는 올해 마일스 데이비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곡 ‘솔라’를 연주했다. 고메스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쓴 것인지 빌 에번스가 쓴 것인지, 아니면 둘이 함께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곡을 소개했다. 데이비스가 발표한 ‘블루 인 그린’이 창작자 논란 끝에 데이비스 사후 에번스가 공동 저작권을 인정받은 사례를 상기시키는 유쾌한 농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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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마이 풀리시 하트’ 연주를 마친 고메스는 기립박수가 터진 객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함께 있어 기분 좋게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거장의 마지막 인사는 결국 관객에 대한 존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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